리가 풀스킨 콤비 구스다운. 신세계라이브쇼핑 제공
리가 풀스킨 콤비 구스다운. 신세계라이브쇼핑 제공
섭씨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캐시미어 코트와 구스다운을 사고, 올해가 가기도 전에 내년 봄 유럽 여행을 예약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상품이 필요한 시점보다 가격이 가장 저렴하거나 선택지가 많은 때를 구매 시점으로 삼는 ‘미래 소비’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과거 일부 재고 상품을 싸게 파는 수준이던 역시즌 판매도 유통업계의 상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S샵이 지난 5월 말부터 7월 19일까지 판매한 겨울 패션 상품 주문액은 1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0억원)보다 375% 증가했다. 1년 만에 4.75배로 불어난 것이다. 품목별로 코트 주문액이 629%, 다운 패딩 점퍼가 512% 늘었다.

폭염도 겨울옷 구매 열기를 꺾지 못했다. 낮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오른 지난달 27일 방송한 ‘르네크루’ 캐시미어 100% 코트는 주문액 4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11일 판매한 ‘제이슨우 트렌치 구스다운’은 방송 시작 35분 만에 약 6억9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올해 처음 선보인 스페인 가죽 브랜드 ‘로보’ 역시 역시즌 기간 누적 주문액이 50억원을 넘어섰다.

신세계라이브쇼핑도 최근 하루 평균 한 차례 이상 겨울 상품 방송을 편성하고 있다. 출시 당시 159만원이던 ‘블루핏X로보 더블롱무스탕’을 약 40% 할인한 99만원에 내놓자 1000개 넘게 주문돼 목표를 20% 이상 웃돌았다. 양모 코트와 밍크뿐 아니라 스웨이드 재킷, 패딩 백팩, 숄 등으로 역시즌 상품군도 넓어졌다. 일부 방송은 목표 대비 150%가 넘는 실적을 올렸다.

한여름 겨울옷 쇼핑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도 번지고 있다. 무신사에서 이달 1~10일 ‘경량패딩’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증가했다. 블랙야크가 지난 3일 출시한 ‘스톤마스터 라이트 다운자켓’은 무신사 신상품 랭킹 1위에 올랐고 상품 조회 수 6만 회, 누적 판매량 1300개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블랙야크 경량패딩’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00배로 뛰었다. 아웃도어 업체들도 예년보다 일찍 가을·겨울 신상품을 내놓으며 수요 선점에 나섰다.
방송 35분 만에 구스다운 '완판'…40도 폭염에 '반전' [프라이스&]
‘미리 사는 소비’의 범위는 여행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GS샵은 지난달부터 내년 1~3월 출발하는 유럽·미주 장거리 해외여행 상품 판매에 들어갔다. 노랑풍선의 미국 동·서부 상품과 교원투어의 대한항공 유럽 상품에는 목표보다 약 10% 많은 예약 상담이 접수됐다. 내년 1월 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강원 양양 호텔 숙박권도 한 차례 방송에서 약 7억원의 주문액을 올렸다.

유통업계는 고물가가 소비자의 ‘구매 달력’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필요한 계절에 정상가를 주고 사기보다 할인 폭이 클 때 미리 확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과거 역시즌 판매가 모피나 고가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단기 행사였다면 지금은 다음 계절의 수요를 먼저 끌어오는 핵심 판매 전략이 됐다”며 “소비자가 계절보다 가격 혜택을 우선하면서 판매 시점의 경계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