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도요타가 변하면 일본이 변한다"…오쿠다 히로시 별세
1995년 사장 취임 후 글로벌화 추진
세계 최대 車업체 성장 기반 마련
프리우스 조기 출시 주도
세계 최대 車업체 성장 기반 마련
프리우스 조기 출시 주도
1932년 미에현 쓰시에서 태어난 오쿠다 전 사장은 히토쓰바시대 상학부를 졸업한 뒤 1955년 도요타자동차판매에 입사했다. 1995년 도요타자동차 사장에 올라 내향적이던 회사의 경영 체질을 바꾸고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쿠다 전 사장은 입사 후 한때 좌천에 가까운 인사로 동남아시아에서 비주류 생활을 했지만 도요다 쇼이치로 전 회장에게 발탁돼 두각을 나타냈다. 1995년 사장 취임 당시에는 “도요타가 변하면 일본이 변한다”는 말을 내걸고 기업문화 개혁에 나섰다.
가장 큰 업적은 이른바 ‘미카와 먼로주의’로 불리던 도요타의 내향적 경영에서 벗어나 글로벌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생산거점을 잇달아 구축하고 주주중시 경영과 환경기술 개발을 강화했다.
오쿠다 전 사장의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다. 1990년대 중반 개발진은 기술적 난관을 이유로 출시 시점을 1998~1999년께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장이던 오쿠다 전 사장은 “1997년 안에 내놔라”고 지시했다. 1997년 12월 교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를 앞두고 환경기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1996년 초 기술자 회의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반발까지 나왔지만 오쿠다 전 사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도요타는 목표를 앞당겼고 1997년 12월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승용차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 시험차는 완성된 뒤 49일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도요타는 1990년대 초부터 축적한 전기차 기술을 바탕으로 인버터와 파워반도체, 모터 등을 자체 개발해 양산에 성공했다.
당시 유럽 자동차업계에서는 “저렇게 복잡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주류 기술이 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잇따라 하이브리드 콘셉트카를 선보이며 도요타를 뒤쫓기 시작했다.
이후 도요타 회장을 거쳐 2002년에는 닛케이렌과 통합한 새 게이단렌의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구조개혁 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쿠다 전 사장은 “일본은 한 바퀴 뒤처진 주자”라며 디플레이션과 구조개혁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게이단렌 회장 재임 4년 동안 약 200건의 정책 제언을 내놓았고, 인구 감소를 내다보며 소비세율 인상과 외국인 노동력 수용 같은 민감한 과제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오쿠다 전 사장은 조정과 합의를 중시하던 기존 일본 재계 지도자와 달리 거침없는 발언과 빠른 실행을 앞세운 ‘행동형 경영자’였다. 도요타를 내수 중심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바꾸고, 당시로서는 위험 부담이 컸던 프리우스 출시를 앞당긴 것도 같은 경영 스타일에서 나왔다.
오쿠다 전 사장이 남긴 “21세기는 20세기의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은 이후 도요타의 변화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이 직면한 구조개혁의 방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남았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