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할 점 없다"는 다카이치…논란 커지는 힘의 정치 [최만수의 재팬 인사이트]
“특별히 반성할 점은 없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25일 특별국회 폐회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는 일본 정치권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논란이 컸다. 황실전범 개정부터 국기훼손처벌법, 부수도법까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법안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 64건은 단 한 건의 낙오도 없이 모두 국회를 통과했다.

다카이치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정치 스타일도 분명해졌다. 높은 지지율과 일본유신회와의 연립을 발판으로 논란이 있는 정책도 빠르게 밀어붙이는 ‘힘의 정치’다. 정책 추진력은 높아졌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생략되고 국회가 정부·여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실전범 개정이다. 개정안은 여성 황족이 결혼한 뒤에도 황실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옛 방계 황족 출신 남성을 황족의 양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당시부터 여성·여계 일왕 허용 문제가 논의돼 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일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80% 안팎에 이를 정도로 높다. 하지만 이번 개정에서도 여성 일왕이나 모계로 왕위를 잇는 여계 일왕 문제는 사실상 비켜갔다.

오히려 옛 방계 황족 출신 남성을 양자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통해 남계 남성 중심의 계승 원칙을 유지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 국민 다수가 여성 일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보수층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국기훼손처벌법 역시 논쟁적이다. 일본 국기를 고의로 훼손할 경우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미 기물손괴죄 등 기존 법률로 대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별도의 처벌법을 만들 만큼 구체적인 입법 필요성이 있는지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졌다.

이 법은 유신과의 연립 합의에 포함된 사안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유신과 이른바 ‘암반 보수층’을 의식해 상징성이 강한 보수 정책을 우선 처리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수도법 역시 유신의 색채가 짙다. 당초 대규모 재해로 도쿄의 수도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경제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수도 기능의 백업을 넘어 도쿄에 버금가는 별도의 경제권을 만드는 구상으로 확대됐다. 오사카도 구상을 추진해온 유신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리면서 국가 차원의 수도 기능 분산 정책인지, 오사카를 위한 지역 정책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성할 점 없다"는 다카이치…논란 커지는 힘의 정치 [최만수의 재팬 인사이트]
다카이치 정권의 경제정책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다. 정부는 총선 공약에 따라 2027년 4월부터 2년간 음식료품 소비세율을 1%로 낮추기로 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2년간 약 10조엔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체적인 보전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감세 종료를 약 9개월 앞둔 2028년 여름에는 참의원 선거도 예정돼 있다. 선거를 앞두고 다시 세율을 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시적 감세가 사실상 상시 감세로 굳어질 경우 재정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자민당 내 반발도 나왔지만 "총리의 숙원"이라는 말에 묻혔다.

법안 처리 속도와 달리 총리의 국회 설명 책임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참의원 예산위원회 집중심의에 출석한 시간은 모두 30시간 남짓으로 과거 정권보다 크게 줄었다.

정부 제출 법안 64건이 모두 성립했지만 인공지능(AI) 개발을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재심제도를 손질한 형사소송법 개정처럼 국민의 권리와 직접 맞닿은 법안까지 충분한 논의를 거쳤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남았다.

국회 밖의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진영이 자민당 총재선거와 중의원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비방 영상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SNS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총리가 의혹을 어떻게 해소하고 온라인 선거운동 규칙을 정비할지도 과제로 남았다.

최근 내각 지지율이 40%대로 하락하면서 개각과 자민당 지도부 인사가 돌파구로 거론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카이치 정권과 자민당 사이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균열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유신과의 연립을 통해 정책 추진력을 확보했다. 반면 그 과정에서 ‘총리관저·유신 대 자민당’이라는 새로운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간사장 교체 등 지도부 인사가 오히려 당내 갈등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가을까지다. 현재로서는 재선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국회를 거치면서 당내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야시 요시마사 총무상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 차기 총재 후보군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법안 64건을 모두 통과시키고 굵직한 보수 정책을 잇따라 실현했다는 점만 보면 이번 특별국회는 다카이치 정권의 압도적인 승리다. 하지만 ‘무엇을 통과시켰느냐’만큼 ‘어떻게 통과시켰느냐’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는 분위기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