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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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설계·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합성생물학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바이러스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전체를 생성하는 AI 모델 ‘에보2’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 16종을 새롭게 설계하고 제작했다고 밝혔다. 박테리오파지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로 항생제를 대체할 치료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진이 새로 만든 박테리오파지를 보안 시설에서 시험한 결과 AI가 설계의 기반으로 삼은 천연 박테리오파지보다 대장균을 제거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전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를 이끈 브라이언 히 스탠퍼드대 교수는 “생성형 AI가 완전한 기능을 갖춘 유전체를 처음부터 설계해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첫 사례”라며 “박테리오파지는 크기가 작고 연구가 충분히 이뤄졌으며 분자생물학과 치료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아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히 교수는 이번 기술이 앞으로 박테리아는 물론 더 복잡한 생명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DNA 합성기업 제니로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유전체 전문가인 에이드리언 울프슨은 “이번 연구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생물학의 ‘라이트 형제의 순간’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생명체를 직접 설계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번 AI 기술이 박테리오파지 치료의 상용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박테리오파지 치료는 환자의 세균 균주에 맞는 특정 박테리오파지를 선별해 감염 부위에 바르거나 주사 또는 경구 투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치료 과정이 복잡하고 세균이 박테리오파지에 내성을 획득할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새뮤얼 킹 연구원은 “항생제 내성을 가진 위험한 병원균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혁신적인 대체 치료법이 필요한 상황에서 박테리오파지 치료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안전성을 고려해 병원성이 없는 대장균 균주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또 동물이나 식물 세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는 학습하지 않은 유전체 언어모델을 사용했다.

다만 FT는 “이 기술은 향후 더 다양한 바이러스에 적용되는 것은 물론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전체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에보2는 오픈소스로 공개돼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새로운 유전체 설계에 활용할 수 있다. 히 교수는 “생물테러 등에 악용될 가능성보다 의료와 인류에 가져올 이익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존스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의 토머스 잉글스비와 모리츠 한케는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평에서 “이번 연구는 생물안전과 생물보안을 둘러싼 시급한 과제를 제기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스탠퍼드 연구진이 연구 과정에서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한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행 규제 체계만으로는 생성형 유전체 기술을 관리하기에 부족하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생성형 바이러스 설계 기술의 등장 여부가 아니라 기술의 혜택을 살리면서도 심각한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감독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