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플라스틱이 화장품·향료 원료로…미생물의 '바이오 업사이클링'
영화 <백 투 더 퓨처>에는 쓰레기를 연료로 삼아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바나나 껍질과 먹다 남은 맥주가 순식간에 에너지로 전환되는 장면은 마술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현실의 바이오 연구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버려진 페트병과 스티로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잘게 쪼개고, 이를 다시 향료 원료나 화학 소재로 바꾸는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바이오 업사이클링(Bio Upcycling)’이라고 부른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물건을 단순히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과는 다르다. 낡은 청바지를 가방으로 만들면 이전보다 값지고 쓸모 있는 물건이 되듯, 바이오 업사이클링은 값싼 폐기물을 더 높은 가치를 지닌 물질로 바꾸는 기술이다.

이 과정의 주인공은 세균과 효모, 곰팡이 등 미생물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효소다. 효소는 생명체 안에서 특정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도록 돕는 ‘분자 도구’다. 일부 효소는 플라스틱처럼 자연에서 잘 썩지 않는 물질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분자 가위’ 역할을 한다.

연구자가 미생물을 활용한 바이오 업사이클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연구자가 미생물을 활용한 바이오 업사이클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은 높은 열로 플라스틱을 녹인 뒤 다시 굳히는 방식이 많다.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재료의 품질이 떨어져 고급 제품의 원료로 다시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미생물과 효소를 이용한 방식은 비교적 낮은 온도와 온화한 조건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 목표로 하는 물질을 선택적으로 분해할 수 있어 필요한 성분만 골라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에는 페트병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도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높은 온도에서도 견디면서 플라스틱을 빠르게 분해하는 이른바 ‘슈퍼 효소’가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난분해성 플라스틱인 스티로폼을 바닐라 향의 핵심 성분인 ‘바닐린’으로 전환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던 스티로폼도 화학적 전처리와 미생물의 생물학적 전환 기술을 결합하면 유용한 향료 원료로 탈바꿈할 수 있다.

바이오 업사이클링에서 중요한 생물자원 중 하나는 곰팡이와 효모, 미세조류 등 다양한 미생물이다. 이들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생명체지만 지구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환경미화원 역할을 한다. 숲속의 낙엽과 흙 속 유기물, 물속 오염물질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미생물이 끊임없이 분해와 전환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미생물은 공장 폐수와 음식물 쓰레기에 포함된 유기물을 분해해 물을 정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과 지방산, 항산화 물질, 색소, 향료 전구체 등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염물질과 폐기물이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의약 소재, 친환경 화학제품의 원료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생물자원센터는 우리나라의 숲과 강, 바다, 흙 속에 숨어 있는 토종 미생물을 발굴·보존하고, 이들이 지닌 플라스틱 분해 능력과 유용 물질 생산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오늘 버린 페트병이 언젠가는 향료와 건강기능식품 원료, 친환경 화학 소재로 돌아올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생물자원의 가능성을 꾸준히 발굴하는 일이 지속 가능한 미래와 국가 바이오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출발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