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처방하던 뇌 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임상 재평가 기로에 섰다. 48주간 이뤄진 임상시험에서 사전에 정한 1차 유효성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약을 계획대로 복용한 환자군과 기억력 관련 세부 평가에선 개선 신호가 확인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50만명을 추적한 실제 진료데이터(RWD)에서도 복용군의 치매 전환 위험은 낮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료를 어느 범위까지 검토해 판단할지가 앞으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운명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의 주요 쟁점.  AI 생성 이미지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의 주요 쟁점. AI 생성 이미지

◇ 전체 환자군에서는 1차 기준 미충족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생성을 돕는 성분이다. 국내에선 퇴행성·혈관성 인지 저하와 치매 관련 증상 등에 오랜 기간 처방됐다. 임상 재평가는 2020년 식약처가 기존 허가 효능을 뒷받침할 임상 자료를 제출하도록 제약사들에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여러 제약사가 공동으로 재평가에 참여했다. 종근당은 퇴행성 경도인지장애(MCI)와 혈관성 경도인지장애(VCI) 환자 대상 임상을 맡아 최근 임상 재평가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했다.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웅바이오 임상도 내년 종료된다.

종근당이 결과를 제출한 임상시험은 MCI·VCI 환자를 대상으로 48주간 이뤄졌다. 전체 분석군(FAS)에서는 사전에 정한 1차 유효성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했지만 임상 계획을 준수하고 일정 기간 이상 약을 복용한 환자군(PPS)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가 나타났다. 기억 영역에서도 개선 신호가 확인됐다. 국내 환자 50만여 명을 추적한 RWD에서도 복용군은 경도인지장애가 치매로 전환할 위험이 낮아졌다.

기억 영역에서 명확한 개선 신호가 확인된 데 의미가 있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치매 전문가들은 환자와 보호자가 가장 크게 호소하는 증상으로 기억력 저하를 꼽는다. 이번 결과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참고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더욱이 이번 임상 연구 기간은 비교적 짧게 진행됐다. 이런 한계에도 환자 체감도가 높은 기억 기능 부분에서 긍정적 변화가 관찰됐다. 신중론도 나온다. 일각에선 하위 분석 결과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이들도 기억력 저하를 우려해 병원을 찾는 환자를 고려하면 임상적으로 참고할 만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최근 발표된 RWD도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임상적 유용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 MCI를 진단받은 환자 50만명을 추적한 코호트 연구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복용군은 비복용군보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환 위험이 10.1%, 혈관성 치매 전환 위험이 16.8% 낮았다. 허혈성·출혈성 뇌졸중 위험도 각각 15~16%가량 감소했다. 흡연·음주·소득·만성질환 등의 변수를 보정한 결과다.

◇ “치료 선택지 제한적”

앞서 식약처는 2024년 RWD와 실제 사용 근거(RWE) 활용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RWD를 유효성 근거로 인정하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의료계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 재평가에도 RWD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RWD는 병원 진료기록과 건강보험 청구 자료처럼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다. RWE는 이를 분석해 약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어떤 효과와 위험을 보였는지 확인한 근거다. 48주 임상만으로는 장기 효과를 충분히 평가하기 어려운 약물의 특성을 고려하면 수년에 걸친 장기 추적 RWD를 종합 검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MCI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의약품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재평가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내에 도입된 항아밀로이드 항체치료제는 국내에서 비급여로 고가에 처방돼 접근성이 낮다. 뇌부종 등의 부작용 탓에 폭넓게 활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은행엽제제’와 ‘니세르골린’ 등도 인지기능 저하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지만 작용 기전과 허가 범위가 달라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방이 환자를 의료 체계 안에서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인지기능 평가와 생활 습관 관리를 이어가도록 돕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적응증이 삭제되면 일부 환자가 검증되지 않은 고가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게 돼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무분별한 처방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 인지기능 검사나 전문적인 진단 없이 이른바 ‘뇌 영양제’처럼 처방하는 관행은 줄여야 한다. 전문가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여지는 남겨야 한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지난해 국내 처방 매출만 5000억원을 넘은 대형 품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 재평가에서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해 적응증이 삭제되면 환자 치료 선택지가 줄어들 것”이라며 “관련 제약사들도 상당한 급여 환수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