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 부진에…월가서 짐 싸는 '착한 펀드'
ESG 투자, 3년 새 657억달러 이탈
美 보수진영 역풍에...블랙록마저 "이젠 ESG 안 써"
정치적 구호 대신 '숨은 투자 기준' 될까
美 보수진영 역풍에...블랙록마저 "이젠 ESG 안 써"
정치적 구호 대신 '숨은 투자 기준' 될까
석유도 못 담고 AI 랠리도 소외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이후 ESG 펀드에서 순유출된 자금은 총 657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ESG 펀드 평균 운용자산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신규 출시된 미국 ESG 펀드 건수 역시 2021년 116개에서 2025년 9개로 급감했으며, 운용을 중단한 ESG 펀드는 91개로 사상 최대였다.배경에는 ESG 펀드의 수익률 부진이 있다. ESG 펀드 상당수는 환경 영향을 고려해 화석연료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급등으로 석유·가스 기업 주가가 뛰었을 때도 ESG 펀드는 그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ESG 펀드 상당수가 최근 증시 상승을 이끈 매그니피센트 7(M7)과 인공지능(AI) 관련주 비중을 낮게 가져간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빅테크는 개별 기업별로 ESG 감점 요인이 뚜렷하다. 가령 아마존은 물류창고 노동 관행이, 테슬라는 이사회 거버넌스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아 업종 내 ESG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미국 내 반(反)ESG 여론이 강해진 것도 한몫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다양성 관련 정책을 후퇴시키자 자금 이탈이 한층 심화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한 2025년 1분기에만 ESG 펀드에서 61억달러가 유출됐다.
'ESG 아버지' 블랙록마저...
기관투자가들도 ESG에서 한발 물러나고 있다. 트럼프를 주축으로 한 미국 공화당 인사들이 대형 자산운용사에 ESG 활동을 축소할 것을 압박하면서다.대표적 사례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다. 블랙록은 ESG를 월가의 주류 의제로 띄운 장본인이지만, 최근에는 ESG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됐다"며 ESG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하는 등 입장을 바꿨다. 미국 보수 성향 8개 주가 블랙록 펀드에서 12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회수하자 경영진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화석연료 산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의결권 행사도 크게 줄었다. ESG 영향력이 정점이었던 2020년대 초만 해도 투자자들이 주요 기업에 탄소 감축 계획을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공격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한풀 꺾인 모양새다. 블랙록의 환경·사회 관련 주주제안 찬성률은 2021년 약 40%에서 2024년 4.1%로 떨어졌다. 지난해 주주총회 시즌 표결에 부쳐진 ESG 관련 주주제안 수 역시 전년보다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각에선 ESG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투자자들이 정치 구호로서의 ESG를 앞세우지는 않지만, 실제 투자 판단에서는 기후변화·노동·지배구조 문제 등을 계속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 투자업체 임팩스에셋매니지먼트의 에드 패링턴 사장은 "ESG는 여전히 기업의 위기 대응력과 회복력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