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잇겠다"는 아들에 "공장부터 가라"
“대학 졸업 후 가업을 잇겠다고 하자 아버지께선 먼저 공장에 내려가 일하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자식이 회사를 잇겠다고 한다면 공장부터 보낼 겁니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절연·고압케이블 제조기업 대륭전선의 임성준 대표(왼쪽)는 지난 2일 충북 진천 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자녀에게도 회사를 물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임 대표는 “공장에서 직접 일해보니 업무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며 “직원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회사를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시켜서 이뤄지는 가업승계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그럴 바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2대째인 임희원 공동대표(오른쪽)가 아들인 임성준 공동대표를 공장으로 보낸 것은 제품과 현장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성준 대표는 18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공장장까지 지낸 뒤에야 대표직을 맡았다. 임희원 대표 역시 대학 시절 회사에 들어와 고(故) 임윤식 창업주의 지시로 청계천 일대에서 전선을 배달하고 자재를 사러 다니며 현장 일을 익혔다. 그는 “이런 경험이 회사의 사업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대륭전선은 1954년 서울 아현동의 작은 전선 가게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70년 가까이 사업을 이어오며 연매출 14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같은 독특한 승계 철학이 깔려 있다. 또 각 세대마다 새로운 성장성을 발굴하려는 노력도 뒷받침됐다. 임희원 대표는 과거 통신선 중심이던 사업 구조를 송·배전용 고압 전선으로 전환하며 회사를 키웠다. 평택에 있던 공장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해 생산 기반을 확대한 것도 임희원 대표 시절에 한 일이다.

2024년 대표에 취임한 임성준 대표는 이제 국내 송·배전 시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고 수출 확대와 신사업 진출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024년 23억원이던 수출 실적은 지난해 111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24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월까지 이미 53억원의 수출액을 달성했다.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않는 탄자니아, 케냐, 스리랑카, 필리핀 등 틈새시장을 개척한 영향이다. 임성준 대표는 “전선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태양광케이블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두 공동대표는 가업승계의 성공 조건으로 1세대와 2세대의 조화를 꼽았다. 임성준 대표는 “2세 경영인은 업종을 불문하고 변화한 환경에 맞춰 사업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변화를 꺼리는 1세대의 의견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가업승계 기업의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임희원 대표 역시 “선대가 쌓아온 기반을 존중하되 다음 세대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맡겨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천=임다연 기자

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제신문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