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오를 때 바이오가 빠지는 진짜 이유
주식 이야기
‘리얼옵션’은 당장의 현금흐름은 미미해도 향후 특정 이벤트 발생 시 거대한 수익을 불어오는 자산이다. 바이오, 게임, 우주항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신약 개발이나 기술 상용화라는 옵션이 터지는 순간 폭발적인 현금흐름을 낸다. 문제는 이 리얼옵션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2~3배 수익을 기대하는 마당에 금리가 4%냐 5%냐는 지엽적이다. 리얼옵션 투자자들에게 진짜 무서운 기회비용은 바로 ‘주식시장 자체의 평균 기대수익률’이다.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은 국채 금리와 다를 바 없는 연 3% 수준의 저성장 시장이었다. 투자자들은 기대수익률에 대한 신뢰를 잃고 각자도생을 택했다. 해외 증시로 떠나거나 단기 트레이딩을 하거나 리얼옵션 성격의 주식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유독 한국 시장에 단기 투자 성향이 만연했던 것도 결국 시장 전체의 기대수익률이 낮아 파생된 서글픈 적응 결과다.
그러나 최근 증시의 판을 바꾸는 제도적 변화와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의 도래로 시장 체질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형주들은 확실한 전방 산업의 탄탄한 현금흐름과 주주환원 확대를 담보로 연 20~30%의 기대수익률을 제안한다. 반면 바이오 섹터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내러티브에 기대는 비중이 크다. 즉,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 대비 기대수익률’이라는 가성비 측면에서 바이오가 대형주에 밀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연 3% 수익률 환경에서는 리얼옵션의 기회비용도 3%에 불과했기에 위험을 감수할 만했다. 하지만 대형 우량주가 확실한 이익을 기반으로 높은 수익률을 뽑아내자 상황이 바뀌었다. 기회비용이 순식간에 10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이는 금리 1~2%p 오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거대한 충격이다. 자본이 바이오를 빠져나와 반도체로 이동하는 것은 단순한 쏠림이 아니라 리스크 대비 보상을 계산한 정교하고 합리적인 움직임이다. 과거 바이오 거품이나 게임주 폭등 역시 ‘연 3%짜리 국장’에서 초과수익을 내기 위해 외줄을 탔던 몸부림이었다.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한국 증시는 과거 3% 시장으로 회귀할 것인가 매력적인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시장으로 안착할 것인가. 리얼옵션의 외줄 타기를 하는 바이오 주식들의 운명은 이 기회비용의 저울이 어느 방향으로 기우느냐에 달려 있다.
은기환 한화자산운용 펀드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