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면 돈 번다던 말, 진짜였다"…380억 거상 된 한국인 [이광식의 거상열전]
김점배 알카우스트레이딩 회장 인터뷰 ①
장흥 소년에서 오만 원양어업 기업인으로
기름값 폭등에 사업 벼랑 끝 몰려
'배 팔겠다' 제안에…100만달러 선뜻 내어줘
"돌아보니, 사람은 장사는 신용으로 하더라"
장흥 소년에서 오만 원양어업 기업인으로
기름값 폭등에 사업 벼랑 끝 몰려
'배 팔겠다' 제안에…100만달러 선뜻 내어줘
"돌아보니, 사람은 장사는 신용으로 하더라"
이제 70줄로 접어드는 한 원양어업 사장은 자신의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보충수업을 하러 들어온 교감선생님은 가난이 몸에 밴 학생들에게 배를 타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을 곧잘 했다. 주변에도 큰 배를 타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의 고향에선 이웃마을인 전남 강진에서 나고자란 김재철 동원산업 명예회장의 ‘출세담’도 익숙했다.
오만을 기반으로 인도양에서 원양어업 사업을 하는 김점배 알카우스트레이딩(AL KAUS OVERSEAS TRADING LLC) 회장 얘기다. 195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수산업에 뛰어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그의 이름 뒤에는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무스카트 지회장, 중동아프리카한상총연합회장, 한상드림장학회 이사장,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 부의장 등 여러 직함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의 그는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배를 타면 가난을 벗어난다는 그 생각을 김 회장은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여수수산고등전문학교(현 전남대 여수캠퍼스)로 진학했고, 군대 대신 바다를 택했다. 5년간 해상 생활을 하면 단기 군사교육만 받고 병역 의무를 마칠 수 있는 특례보충역 제도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도양 연안에 진출해 있던 한국 원양어선사에 취직해 곧장 바다로 나갔다.
김 회장은 마침 오만 인근에서 조업하는 트롤선 회사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회장은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군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랴부랴 회사를 옮겨 오만으로 갔다”고 회상했다. 육상에 한 달 이상 머무르면 병역 특례 자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렇게 오만은 그의 삶으로 들어왔다. 1981년 오만에 도착한 그는 항해사로 일하다가 현지 수산회사 관리직을 거쳤고, 2000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은 순풍을 탔다. 한국과 일본, 아프리카, 유럽 시장을 개척하면서 수출처를 넓혔다. 오징어와 한치, 갑오징어, 돔, 민어, 갈치 등 50여 종의 수산물을 국가별 수요에 맞춰 공급했다. 2000~2005년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50달러를 넘지 않았고, 2010년까지도 80달러를 밑돌았다. 안정적인 유가를 바탕으로 회사도 착착 성장해갔다.
그랬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친 것은 2013년 무렵이다.
이번에도 기름값이 발목을 잡았다. 2011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는 좀체 낮아질 생각을 안했다. ‘직원’이었던 1979년과 달리 이젠 ‘사장님’이었기 때문에 상황은 심각했다. 돈을 빌릴 곳도 마땅치않았다.
고민하던 김 회장은 결국 소유하고 있던 배를 매각하기로 결심, 한 해 300만달러 이상 납품하던 코트디부아르의 한 거래처를 찾아갔다. 그녀는 남편도 없이 홀로 생선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를 시작해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 김 회장은 “나는 계속 조업을 할 테니 운영은 내가 맡고 자금만 지원해달라”고 제안했다. 사업 밑천을 모두 넘길테니 일만 하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김 회장은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만난 거래처가 사람 하나 믿고 거액을 빌려준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국인 한국에서조차 돈을 빌리고 싶어도 빌릴 곳이 없었고, 서류만 산더미같이 필요한 때였다. 서로 투자를 쉽게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아프리카에서 단지 거래를 하면서 믿음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100만달러를 빌려준 것이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맺은 가장 소중한 인연”이라며 “지금도 가족끼리 왕래하면서, 간혹 한국에 오시게되면 편의를 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김 회장의 회사는 트롤선 4척을 운영하며 20여 개국에 수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직원은 대략 210명, 이 중 외국인이 절대 다수다. 한해 매출만 2500만달러 안팎에 이른다.
그는 “개소식에서 물이 뿜어져 나올 때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해마다 지인들이 100만~100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기부를 이어왔다”면서 감사함을 표했다.
45년 가까이 바다에서 살아온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경영 철학도 결국 하나다. “배보다 중요한 게 사람입니다. 욕심을 부리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신용 덕분이었다.” 김 회장의 얘기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