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요 리메이크 했더니 1위…요즘 MZ들 J팝에 빠진 이유 [K컬처인사이드]
K팝 본토서 J팝 스트리밍 30%↑
태연도 日 인기곡 리메이크
밴드 넘어 J팝 전설도 내한
태연도 日 인기곡 리메이크
밴드 넘어 J팝 전설도 내한
국내 음원 차트의 판도가 미묘하게 요동치고 있다. 직관적인 후크송과 SNS 숏폼 챌린지 맞춤형 '이지리스닝' 위주로 획일화되던 K팝의 틈바구니를 뚫고, 특유의 아날로그 서사와 깊은 감성을 지닌 J팝(J-POP)이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공략하고 나섰다. 단순히 특정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독자적 영역을 넘어, 이제는 차트 최상위권을 위협하는 주류 장르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모양새다.
최근 이러한 흐름에 가장 강력한 불을 지핀 것은 '믿고 듣는 보컬리스트' 태연이다. 태연이 가창자로 나선 'J-POP REMAKE'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음원 '만찬가' 리메이크 버전은 지난달 29일 공개되자마자 음원 시장을 강타했다.
발매 직후 국내 주요 음원 플랫폼인 벅스의 실시간 및 일간 차트 1위를 단숨에 석권한 데 이어, 멜론 TOP 100 13위, HOT 100(발매 30일 이내) 1위 등 메이저 차트 상위권에 잇달아 안착했다. 유튜브 뮤직에서는 한국 인기 급상승 동영상 정상을 차지하며 음원과 영상 전방위에서 폭발적인 흥행세를 입증하는 중이다.
이번 흥행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명곡의 뼈대 위에 태연 독보적인 보컬 색깔과 세밀한 감정 표현력을 얹어 한국어 서사로 매끄럽게 '문화 번역'을 해낸 결과로 풀이된다. 가요계에서는 벌써부터 후속 프로젝트와 참여 아티스트 라인업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J팝을 활용한 K팝 아티스트들의 변주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그룹 NCT WISH(엔시티 위시) 역시 지난달 22일 일본인 인기 그룹 TRF가 1994년 발표한 히트곡을 재해석한 'BOY MEETS GIRL(보이 미츠 걸)'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원곡이 지닌 특유의 아련한 정서적 잔향 위에 현대적인 청량함과 하우스 드럼 사운드를 얹어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매력을 전달했다는 평가다. 2024년에는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도쿄돔 무대에서 마츠다 세이코의 데뷔곡 '푸른 산호초'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한일 양국에 대대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국내 연간 전체 음원 이용량(써클차트 1~400위 기준)이 2019년을 정점으로 매년 전반적인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침체기 속에서, 특정 비주류 장르의 스트리밍 사용량이 홀로 30% 가까이 폭증한 현상은 업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젊은 층이 이토록 J팝에 열광하는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숏폼 중심의 K팝 시장이 놓치고 있는 '서사 중심의 아날로그 감성'에서 해답을 찾는다.
최근의 K팝은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플랫폼에서의 바이럴을 의식해 2분 안팎의 고도로 정형화된 이지리스닝 곡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개 방식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직관적인 훅(Hook)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청각적 피로감이 쌓였다는 지적이다.
반면 J팝은 여전히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베이스 기반의 직관적인 밴드 사운드와 특유의 복잡하면서도 문학적인 코드 진행을 고수한다.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출연한 밴드 FT아일랜드의 이홍기는 J팝 특유의 매력에 대해 "감성이 요즘 MZ세대의 취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며 "감정 표현을 확실하게 밀어붙이고 평범하거나 지루한 음악 스타일을 지양한다. 특히 기타 톤의 구성이나 질감 같은 부분은 국내 대중음악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아날로그 톤을 유지하고 있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여기에 타인의 시선보다 '개인의 취향 소비'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10~20대 세대의 정서적 특성이 맞물렸다. 획일화된 메이저 차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감성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숨은 명곡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디깅(Digging)하는 소비 방식이 J팝 시장의 덩치를 키운 동력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가제의 내한 무대다. 그는 국내 가요계에서도 최고 수준의 티켓 파워를 가진 글로벌 K팝 그룹이나 임영웅 등 톱스타급 아티스트들만 입성할 수 있는 고척스카이돔에 둥지를 틀었다.
이뿐만 아니다. 국내 J팝 차트 상위권을 장기 집권 중인 오피셜히게단디즘은 오는 8월 'K팝의 성지'로 불리는 올림픽공원 KSPO돔(옛 체조경기장)에서 한국 팬들을 만난다. 지난 20~21일에는 또 다른 메이저 밴드인 킹 누(King Gnu)가 동일한 장소에서 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티켓을 완전히 매진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여기에 바운디(인스파이어 아레나), 백넘버(킨텍스) 등 일본 최고 권위의 뮤지션들이 줄줄이 내한 스케줄을 확정 지었다. 과거에는 록 밴드나 서브컬처 싱어송라이터 중심의 좁은 스펙트럼에 갇혀 있었다면, 최근에는 큐티 스트리트 같은 신예 걸그룹부터 곤도 마사히코, SMAP 출신의 기무라 다쿠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아이돌 스타'들까지 앞다투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모양새다.
"글로벌 확장성 담보"…K팝 인프라, 지름길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을 찾는 일본 아티스트와 현지 소속사들의 인식 변화다. 이들에게 한국 시장은 단순히 투어 수익을 올리는 소비처 이상의 전략적 요충지로 격상됐다. 전 세계에서 TV 음악 프로그램 시스템과 전용 팬 커뮤니티 플랫폼 인프라가 가장 정교하게 발달한 'K팝 본고장'에서의 성공적인 프로모션이 글로벌 시장으로 직행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일본의 8인조 걸그룹 큐티 스트리트(CUTIE STREET)는 자신들의 히트 트랙을 한국어 버전으로 번안해 엠넷 '엠카운트다운'과 KBS2 '뮤직뱅크' 등 국내 대표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파격적인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 방송 출연 직후, 기존에 반응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인도와 북미 지역의 음원 판매량 및 스트리밍 지표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데이터 전환을 경험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한 개별 음원 유통을 넘어 양국의 대중음악 인프라를 제도적으로 잇는 교류형 프로젝트도 돛을 올렸다. 방송인이자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약 중인 강남이 총괄 기획자로 나선 'J-POP REMAKE'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일 양국의 문화적 정서를 유년 시절부터 가까이서 체화해 온 강남의 오랜 고민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문화적 브리지'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강남은 "좋은 J-POP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명곡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며 "음악을 통해 양국을 잇는 문화사절단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프로젝트 주관사인 SHgold네트웍스 관계자는 "최근 한국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J팝이 하나의 명확한 대안 장르로 뿌리내린 시장 환경 변화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양국의 음악 시장과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장기적인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