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내, '취사병'으로 전설이 되다 [인터뷰+]
티빙 오리지널 '취사병 전설이 되다' 윤동현 역 배우 이홍내
배우 이홍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티빙 오리지널 '취사병 전설이 되다'(이하 '취사병')로 그에게 처음 쏟아진 반응은 낯설고 반가운 것들이었다. OCN '경이로운 소문' 지청신을 비롯해 그동안의 작품에서 강렬한 악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온 이홍내는 처음 듣는 수식어에 "기쁘다"고 했다. "전작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거리감을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다"며 "긍정적인 반응들 덕분에 제가 더 귀여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홍내는 잘 웃고, 공손한 말투의 소유자였다. 이홍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조카의 '캐치 티니핑' 스티커를 뺨에 붙이고, 엉뚱하고 솔직한 매력을 뽐내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실제 성격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구해왔다면, 이번에는 군대 경험까지 "싱크로율 100%"에 가까운 인물을 연기한 셈이다.
그런 덕분일까. 부모님의 반응도 달라졌다. 작품이 나올 때마다 '고생했다'는 말이 전부였던 그들이 이번엔 '사랑스럽다'고 했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모, 삼촌, 어린 사촌까지 '취사병'을 이야기했다. 2014년 영화 '지옥화'로 데뷔해 올해 연기 경력 12년째인 이홍내는 "'취사병'이 나이 제한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긴 작품이 됐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다"고 거듭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님이 제 어리숙한 모습을 보셨대요"
'취사병'에서 이홍내가 연기한 윤동현은 손만 대면 음식 맛이 떨어지는 '마이너스의 손' 취사병이다. 헬스트레이너를 꿈꿀 만큼 운동에 진심인 말년 병장으로, 극 초반엔 강성재(박지훈 분)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다 결정적인 순간엔 든든한 선임의 면모를 드러내는 반전 매력의 캐릭터다.
캐스팅은 전작 촬영을 마친 직후 오디션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4부 대본까지 미리 받아 읽고 감독을 만났다.
"오디션에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 날 연락을 받았어요. 지금도 감독님께도 큰 도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캐스팅의 실마리는 이홍내가 출연했던 단막극 '목소리를 구분하는 법'이었다. 어리숙하고 사랑에 서툰 PD 역할이었다. 감독이 그 작품에서 눈여겨본 어리숙한 면모가 어필됐다는 것이다.
"직접 여쭤보진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어필된 것 같아요. 감독님 입장에서도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은 캐스팅이었을 텐데, 그 용기에 감사했어요."
9kg 증량… "더 찌우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대본을 받자마자 이홍내가 가장 먼저 챙긴 건 외형 준비였다. 윤동현은 운동 마니아로 묘사된 인물이었다. 강성재가 처음 보고 위압감을 느낄 만큼 다부진 몸이어야 했다.
운동 계획을 짜고 하루 다섯 끼를 먹기 시작했다. 닭가슴살, 오트밀, 햄버거. 벌크업을 위해 넣을 수 있는 건 모두 넣었다.
"캐스팅이 마지막으로 됐어요. 다른 배우들이 먼저 다 정해진 상황이라 제게 주어진 시간이 빠듯했어요. 처음 대본 받았을 때랑 중간에 쟀을 때 9kg 차이가 났는데, 15kg 이상은 키우고 싶었거든요. 조금 아쉽습니다."
몸이 달라지자 촬영도 달라졌다. 실제로 각진 체형 덕분에 강성재와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 위압감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왔습니다"
현장에서 이홍내는 "제가 제일 재밌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병장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제일 편한 게 병장이잖아요.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왔다는 얘기를 현장에서 하고 다녔어요.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홍내는 강원도 고성의 포병 부대에서 K9 탱크의 포 낙하 위치를 계산하는 병과로 복무했다. 서울로 올라와 배우 일을 하다 영장이 나오자마자 바로 입대했다. 당시 배우 일은 월세를 내며 단편, 독립 영화를 찍는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그때 군대가 좋았어요. 세끼 다 챙겨주고, 머리가 맑아졌어요. 복잡하게 뭘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잘 시간 되면 자고, 깨우면 일어나고, 시키는 것만 하면 아무도 터치 안 하고. 그게 적성에 잘 맞아서 '직업 군인 더 할까' 생각도 했을 정도예요."
실제로 전역 직전까지 고민했다. 새벽 2시 감시 근무를 서며 시간이 가지 않아 온갖 상상을 하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연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안정적인 군 생활과 불안정하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어요. 결국 그 마음이 이겼죠."
그 경험이 윤동현이라는 인물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병장이 위에는 긴팔, 아래에는 반바지를 섞어 입는 방식, 침대에 잘 앉아 있지 않고 눕거나 기대는 느슨한 자세.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디테일들이었다.
"군 생활 안 했다면 공부로는 알 수 없었을 부분들이에요. 제가 실제로 병장이었을 때 행했던 모습들을 많이 녹였습니다."
박지훈과의 호흡… "동생이라는 느낌이 없었어요"
"저보다 베테랑 배우고, 지훈이가 현장 분위기를 주도했어요. 스스로 망가지면서 웃기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촬영에서도 성대모사를 준비해와서 분위기를 살렸어요. 진짜 분위기 메이커였습니다. 친구처럼 하고 싶은 배우예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군 관련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가까워지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이른바 '밀덕'이었다.
미각보이즈가 OST로 화제를 모으며 음악방송까지 출연했을 때, 이홍내는 엠카운트다운까지 본방사수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부럽기도 했어요. 언제 그렇게 가요 무대를 나가고 뮤직비디오 타이틀롤을 하겠나 싶더라고요. 촬영장에서 밥 먹고 춤 연습하고, 피나는 연습을 직접 봤거든요. 그렇지만 음식을 만드는 건 강성재와 윤동현이라 지켜보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단백질 동현으로 합류해줄 수 없냐'는 말이 있던데, 기분 좋은 얘기였습니다.(웃음)"
취사병 역할이었지만 요리는 캐릭터 설정처럼 자신도 '마이너스의 손'에 가까웠다. 다만 박지훈과 함께 촬영 두 달 전부터 요리 학원을 다녀 칼질, 웍질을 익혔다.
"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못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을 묻자 주저 없이 일명 '명순조'로 불리는 '명태 뽀모도로 순살조림'을 꼽았다. 극 중 군사 기피 메뉴 1위였던 명순조를 푸드팀이 토마토 소스 베이스 양식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반대로 강성재가 만든 야채튀김은 맛없게 연기해야 했는데 갓 튀긴 거라 너무 맛있었다고 했다.
"작품 끝나고 에어프라이어를 샀어요. 요리에 관심이 생겨서요. 그런데 취사병 요리는 대용량이라 재료가 너무 많이 남더라고요. 결국엔 간장계란밥 해먹고 있습니다.(웃음)"
"3년 만의 인터뷰, 쉰 적은 없었습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인터뷰지만, 이홍내는 그동안 쉬지 않았다고 했다. 찍어둔 작품들이 개봉 시기가 미뤄지면서 노출이 없었을 뿐이다.
"3주 이상 쉰 적이 없었어요. 찍어놓은 게 꽤 있어요. 오래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에게 큰 자신감을 안겼다. 전작의 이미지를 깨고 코믹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냈다는 확인을 받은 셈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앞으로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계속 새롭고 신선하고 내가 재밌는 역할에 도전하면서 연기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불안과 걱정이 클 때마다 직접 연기 시범을 보이며 캐릭터의 힌트를 줬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연기를 참 잘하세요. 직접 시범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감독님 표정을 따라 하면서 윤동현이라는 인물을 많이 찾게 됐어요. 큰 용기를 주신 분이에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