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 우리는 왜 함께 모이지 않게 되었는가
논술을 준비하다 보면 ‘공동체’ ‘시민사회’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 등과 같은 제시문을 만나게 됩니다. 막상 이런 주제가 나오면 “공동체는 소중하다” 같은 유의 좋은 말만 늘어놓다가 답안이 끝나버리기 쉽습니다.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은 이 막연한 주제를 어떻게 손에 잡히는 증거로 분석하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출발점은 사소합니다. 미국에서 볼링을 치는 사람은 늘었는데, 동호회에 가입해 여럿이 함께 치는 사람은 급격히 줄었다는 관찰입니다. 혼자 볼링을 치는 이 작은 풍경에서 퍼트넘은 미국 사회가 ‘함께 모이는 습관’을 잃고 있다는 중요한 진단을 이끌어냅니다.

이 텍스트가 인문논술에서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측정 가능한 숫자로 다루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퍼트넘은 “공동체가 약해졌다”는 느낌에 머물지 않고 카드 게임 횟수, 헌혈 비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빈도 같은 작은 지표들을 끌어모아 그 느낌을 입증합니다. 둘째, 하나의 결과에 여러 원인이 각각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퍼센티지로 나누어 따집니다. 셋째, 토크빌·마르크스·루소·스미스 등과 비교하기 좋습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주장은 루소의 논의와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자본이 된다”는 발상은 스미스의 시장·교환론과 맞붙여보기에 좋습니다.

결속형과 가교형 사회자본 주목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잡고 가야 할 것은 열쇠말인 ‘사회자본’입니다. 자본이라고 하면 보통 돈이나 기계(물적자본), 또는 개인이 쌓은 학력과 기술(인적자본)을 떠올립니다. 이 둘은 모두 ‘내가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자본은 개인에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 그 자체에 쌓이는 자본입니다. 예를 들어 동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도 이웃이 우리 집 앞을 눈여겨봐 도둑이 들 확률이 줄어듭니다.

다음으로 이 책 전체를 떠받치는 두 가지 구분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결속형 사회자본은 가족, 동창 모임, 같은 종교를 믿는 집단처럼 비슷한 사람끼리 맺는 끈끈한 관계입니다. 힘들 때 기댈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만, 안으로 뭉치는 만큼 외부 사람을 밀어내는 배타성을 띠기 쉽습니다. 가교형 사회자본은 직업도 나이도 출신도 다른 사람들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느슨한 관계입니다. 끈끈한 대신 좁은 결속형과 달리, 가교형은 느슨한 대신 넓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퍼지고 사회가 하나로 통합되는 데는 이 가교형이 결정적인데,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편안함이 없으니 만들고 유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끝으로 사회자본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끈끈한 관계망은 폭력 조직이나 폐쇄적 패거리에게도 똑같이 무기가 됩니다. 그래서 사회자본을 무조건 좋게 보지 말고, 협력과 신뢰 같은 좋은 효과는 키우면서 끼리끼리 뭉쳐 남을 배척하는 나쁜 효과는 줄이는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물어야 합니다.

‘5부 구성’의 설득력

이 책은 비유하자면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짜여 있습니다. 사건을 정의하고, 양상을 살핀 뒤, 범인을 추적하고, 결과를 따져보고, 마지막에 해결책을 내놓는 5부 구성입니다.

제1부는 문제를 꺼내놓는 단계입니다. 한때 미국은 시민들이 활발하게 모이던 전성기가 있었습니다. 단체 회원은 늘었고, 교회는 가득 찼으며, 투표율도 올랐습니다. 그런데 20세기의 마지막 30여 년에 접어들면서 동네 카드 모임, 참전 군인회, 학부모회가 약속이나 한 듯 회원을 잃기 시작합니다. 나이 든 회원이 세상을 떠나서가 아니라, 젊은 신입이 들어오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점입니다.

제2부는 실태를 보여주는 단계입니다. 정치 참여부터 종교 모임, 직장에서의 유대, 친구·이웃과의 만남, 자원봉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같은 방향의 하락이 확인됩니다. 핵심은 그 하락이 한 분야의 우연이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나타났다는 데이터의 일관성입니다.

제3부는 가장 흥미로운 ‘범인 찾기’입니다. 퍼트넘은 용의자 넷을 한 명씩 심문합니다. 시간과 돈에 쫓기는 삶이 약 10%, 도심에서 멀어진 교외 거주와 긴 출퇴근이 약 10%의 책임을 집니다. 텔레비전은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대한 관심과 신뢰 자체를 갉아먹어 약 25%의 책임을 집니다. 가장 큰 넷째 용의자는 ‘세대교체’입니다.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함께 겪으며 모이고 참여하는 습관이 몸에 밴 세대가 퇴장하고, 어릴 때부터 TV를 보며 자란 세대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참여의 평균 자체가 내려앉았다는 것입니다. 이 요인 하나가 약 50%를 설명합니다.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대개는 교육받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참여하는데,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인의 교육 수준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참여도 늘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었으니, 그 효과를 모두 상쇄할 만큼 강한 다른 힘이 작동했다는 뜻입니다.

제4부는 그 결과를 따집니다. 사회자본은 ‘있으면 훈훈한 것’이 아니라 삶에 실질적 차이를 만듭니다. 사회자본이 두터운 지역일수록 아이들의 학업과 정서 발달이 좋고, 범죄율은 낮으며, 경제에는 활력이 돕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과 맺는 유대가 흡연이나 비만에 맞먹을 정도로 건강과 수명을 좌우한다는 분석입니다. 민주주의를 다루는 장에서는 토크빌의 통찰, 곧 민주주의가 제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의 습관’에 뿌리를 둔다는 생각을 데이터로 다시 확인합니다.

제5부는 해결책입니다. 퍼트넘이 희망의 근거로 드는 것은 미국 자신의 과거입니다. 19세기 말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대규모 이민으로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지던 시기, 미국인들은 한 세대 만에 YMCA, 보이스카우트, 학부모회, 적십자 같은 단체들을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사회자본은 의도적으로 만들고 가꿔야 하며, 100년 전 선조들이 해냈으니 지금 세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이 책의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더 절실합니다. 1인 가구가 늘고, 혼밥과 혼술이 자연스러워지고, SNS로는 늘 누군가와 이어져 있지만 정작 외로움은 깊어지는 역설. 퍼트넘이 짚은 현상이 이름만 바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퍼트넘의 개념을 가까운 사례에 대입해보십시오. 학급 단체 채팅방, 동아리 정기 모임, 아파트 주민회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도 결속형과 가교형, 사회자본이 쌓이고 흩어지는 과정이 똑같이 벌어집니다. 하나의 텍스트에 여러 각도의 질문을 던져보는 연습, 그것이 논술이 요구하는 다각적 사고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