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뒤흔들라"…인도네시아 하늘에 쏠리는 눈 [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폭염만이 아니다. 기온 상승과 강수량 감소는 인도네시아의 대형 산불 가능성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매년 건기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이웃 나라들이 인도네시아의 하늘을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산불은 단순한 환경 오염이 아닌 치명적인 '경제적 변수'다. 대규모 화재로 발생한 연무(Haze)가 국경을 넘어 주변국으로 확산하면 관광, 물류, 항공, 보건, 농업 등 산업 전반이 마비된다. 아세안 경제가 긴밀하게 묶여 있는 상황에서 한 국가의 재난은 역내 전체의 공동 타격으로 이어진다.
이미 뼈아픈 전례가 있다. 2015년 수마트라, 칼리만탄, 파푸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총 260만 헥타르를 태우며 몇 달간 지속됐다. 당시 세계은행(World Bank)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약 1.9%에 해당하는 약 161억 달러로 추산했는데, 장기 건강 피해 비용까지 포함하면 실제 손실은 GDP의 3.3%에 달한다는 후속 연구도 있다. 당시 학교가 문을 닫고 항공편이 대거 결항했으며 수백만 명이 호흡기 질환에 노출됐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역시 사상 최악의 대기질 악화로 경제 활동이 일시 중단되는 홍역을 치렀다.
이토록 산불이 치명적인 배경에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이탄지(Peatland)'가 있다. 이탄지는 수천 년간 축적된 유기물이 두껍게 쌓인 토양으로, 일단 불이 붙으면 지하 깊은 곳에서 몇 달씩 연소가 지속된다. 일반 산불보다 진화가 훨씬 어렵고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양도 압도적이다. 건기가 길어질수록 작은 화재가 거대한 재난으로 돌변하는 이유다.
이로 인한 경제적 파장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집요하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관광산업이다. 이웃나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모두 관광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다. 독성 연무로 대기질이 악화되면 여행 취소 사태가 불가피해진다. 팬데믹 이후 간신히 회복세를 탄 동남아 관광업계에는 치명적인 암초다.
항공과 물류 부문도 직격탄을 맞는다.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 항공기 결항이 속출한다. 특히 동남아의 허브 공항인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기능이 저하되면 지역 전체의 인적·물적 이동이 마비된다. 세계 교역의 핵심 통로인 말라카 해협 주변의 해상 물류까지 차질을 빚으면 글로벌 공급망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추진 중인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 관점에서도 이는 중대한 변수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제조업 중심지로 급부상했지만, 반복되는 산불과 연무는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리스크 요인이다. 안정적인 공장 가동을 위해서는 전력과 물류 인프라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농업 부문 충격은 원자재 시장을 흔든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팜유의 약 58%를 공급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식품부터 화장품, 바이오연료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는 팜유 생산량이 산불과 가뭄으로 급감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게 된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팜유를 비롯한 주요 농산물과 기초 원자재를 동남아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산불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증가는 국내 기업의 생산원가 압박과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이자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4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한다. 산불이 광산 자체를 태우지 않더라도 대규모 연무로 인한 노동자 보건 악화, 물류 차질, 전력 불안정은 산업 전반의 운영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중시하는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에게 인도네시아의 환경 리스크는 이제 중요한 투자 판단 지표가 되었다.
여기에 막대한 보건·사회적 비용이 더해진다. 호흡기 환자 급증은 의료비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야심차게 건설 중인 동칼리만탄(East Kalimantan)주의 신행정수도 '누산타라(Nusantara)' 역시 산불 다발 지역인 칼리만탄섬 내에 있어 국가적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산불 문제는 외교적 갈등으로도 번진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매년 인도네시아에 강력한 재난 방지 대책을 요구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광활한 영토와 복잡한 토지 소유 구조, 농장 개간을 위한 불법 소각 관행 등으로 인해 근본적 해결에 애를 먹고 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AEC) 출범 이후 상품과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하게 됐지만 국경을 가리지 않고 넘어오는 오염물질은 아직 풀지 못한 모든 공동체 국가들의 숙제다.
올해 산불이 과거 최악의 사태만큼 커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산불은 더 이상 한 국가의 환경 뉴스가 아니다. 관광, 물류, 농업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과 글로벌 투자 환경을 뒤흔드는 아세안 전체의 '복합 경제 리스크'다. 동남아 인접국가들이 올여름 인도네시아의 하늘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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