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수 "美 학생, 대동여지도에 열광…석박사 과정도 개설할 것"
“장갑을 낀 학생들이 실제 대동여지도를 만지고, 냄새까지 맡아보며 진지하게 학업에 임하는 모습에 큰 울림을 느낍니다.”

미국 서부의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한국학 입문’ 강의를 맡고 있는 안진수 동아시아학과 교수(사진)는 수업 5~6주차가 되면 수강생을 데리고 교내 동아시아도서관으로 현장 학습을 간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국보급 유물인 대동여지도 원본 22책이 완전한 형태로 소장돼 있다. 17일(현지시간) 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안 교수는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 문화에 더욱 깊게 빠져든다”며 “그만큼 한국학 전공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학도서 한국학 개척자로

UC버클리는 지난해 한국학 전공을 처음으로 개설했다. 올해는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2012년부터 한국학을 가르친 안 교수가 14년간 고군분투한 결과다. 다음 목표는 대학원 과정 설립이다. 그는 “전공자들이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교수로 성장해야 한국학도 비로소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안 교수는 올여름 학교에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안 교수는 영화미디어 학부에 입학하면서 UC버클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오느라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못 갔다. 영화 제작을 꿈꿨지만 곧 언어의 한계에 부딪혔다. 대신 학계로 발길을 돌렸다. 인근 UCLA에서 영화이론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대(NYU)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며 연구자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2007년에는 잠시 귀국해 홍익대 디자인미디어스쿨 강단에 서기도 했다. 이후 6년 만에 모교인 UC버클리에서 한국학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부임 당시 안 교수는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학 교수였다. 학과를 운영하기 위해 전공인 영화가 아니라 고대와 근현대 한국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2021년 한국 근현대문학을 전공한 케빈 샤델 교수가 영입돼 학과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전문학 전공인 스텔라 김 교수가 임용됐고 올해 가을학기부터는 향가 전문가인 마저리 버지 교수도 합류한다. 버지 교수는 2012년 UC버클리에서 조교로 안 교수의 수업을 돕기도 했다.

외국인이 한국 문화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안 교수는 “학문의 세계에는 어마어마한 괴물이 많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웃 중국어학과에도 시인 이태백을 공부하는 백인 교수가 있다고 귀띔했다. 안 교수는 “오히려 학생들이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중국문학까지 함께 공부하다 보니 비교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높아진 韓 문화의 위상

UC버클리에서 한국학 교수진이 늘어난 것은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과도 맞물린다. 안 교수는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언어 수업 수강생이 전부 줄었지만, 예외가 바로 수화와 한국어”라고 강조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 뿌리로 이어진다.

안 교수는 “일반적으로 K팝을 통해 한국 문화에 유입된 학생은 고전에 관심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학구열이 높은 UC버클리 학생은 K팝만큼이나 고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고전을 경험하고 역사를 공부했을 때 한국 문화를 더욱 잘 알게 됐다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