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마라케시, 2월마다 54개국 아프리카 현대 미술이 펼쳐진다
[리뷰] 1-54 콘템포러리 아프리칸 아트 페어
라 마무니아 호텔을 중심으로
다양한 갤러리와 작품들 모여
지역 특수성 넘어 보편적 동시대성으로
아프리카 현대 미술의 오늘을 만나다
라 마무니아 호텔을 중심으로
다양한 갤러리와 작품들 모여
지역 특수성 넘어 보편적 동시대성으로
아프리카 현대 미술의 오늘을 만나다
대륙의 54개 국가를 하나로 아우르겠다는 포용적 의지를 천명한 ‘1-54 콘템포러리 아프리칸 아트 페어’는 명실상부 이 지역 현대 미술을 위한 유일무이한 플랫폼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로컬 갤러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국적 갤러리들을 한자리에 모으며, 아프리카 미술을 더 이상 ‘지역적 특수성’에 가두지 않고 ‘보편적 동시대성’으로 승화시킨다.
'1-54 마라케시 2026'이 열린 라 마무니아 / 사진. ©Mohamed Lakhdar
아프리카 미술은 더 이상 서구적 관점에서 발견되는 대상도, 단일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과거에 시장이 이를 익명의 부족(Tribal)이 생산한 민속 유물로 치부하며 전통적인 모습에만 머물게 했다면, 오늘날의 아프리카 미술은 다층적인 역사와 세계화의 흐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생된 디아스포라적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직조하며 미술사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증명해 온 플랫폼이 바로 ‘1-54 콘템포러리 아프리칸 아트 페어’다.
2013년 투리아 엘 글라위(Touria El Glaoui)가 설립한 이래로, 런던, 뉴욕, 마라케시를 순회하며 아프리카 현대 미술에 전념해 온 최초의 국제적 장이다. 아프리카를 구성하는 54개국의 다채로운 예술적 목소리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명칭에 담았다. 제7회 마라케시 에디션은 2월 5일부터 8일까지 ‘라 마무니아(LA MAMOUNIA)’ 호텔을 거점으로 대륙의 동시대적 서사를 확장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54 마라케시 2026'이 열린 라 마무니아 내부 풍경 / 사진. ©Mohamed Lakhdar
아트 페어의 허브, 라 마무니아
윈스턴 처칠과 이브 생 로랑 등 시대의 아이콘들이 사랑했던 라 마무니아는 마라케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장소다. 1-54 마라케시의 시작부터 파트너십을 맺어온 이곳은 야자수와 올리브 숲이 어우러진 아랍·안달루시아 양식의 이국적인 건축미를 배경으로, 아트 페어의 위상을 고도화된 사교와 담론의 장으로 격상시킨다. 호텔 내 전용 컨벤션 공간에 마련된 행사에 전 세계 12개국, 20여 개 갤러리가 모였다.
로프트 아트(LOFT ART), 에이에이(AA), 소 아트(so.art), 엠씨씨(MCC) 등 모로코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7곳의 로컬 갤러리를 비롯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도쿄의 스페이스 엉(space Un)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2년 연속 부스를 차린 스페이스 엉은 카메룬 아티스트 바르텔레미 토구오(Barthélémy Toguo)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 같은 국제적인 교류와 교감의 열기는 개별 부스에서 작가와 직접 대면하는 순간에 이르러 그 정점을 맞이했다.
엠씨씨 갤러리 부스에서 ‘생명력’을 의미하는 옐로 포인트 헤어가 인상적인 말리카 스칼리(Malika Sqalli)를 만났다. 예술가이자 스카이다이버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녀는 자신의 공감각적 체험을 투영한 작품 ‘어디에서 왔나요(Where are you from)’와 ‘달은 태양의 꿈이다(The moon is the dream of the sun)’를 소개했다.
말리카 스칼리의 ‘어디에서 왔나요' / 사진. ©Malika Sqalli
“구름 위를 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촉각적인 예술로 치환하고 싶었습니다. 제 경험상 구름은 상상처럼 폭신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차갑고 따갑게 느껴졌어요.” 당시의 강렬한 느낌을 전하고자 실제 비상 낙하산을 소재로 활용했는데, 그녀에게 비상 낙하산이란 능동적인 삶을 상징한다. 말리카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낙하산은 누군가 대신 펼쳐주지 않으며, 직접 작동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죠. 이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이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포합니다.” 터프팅한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겨울날 차가운 눈 위를 비추는 보름달 아래 홀로 선 작가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낸다.
말리카 스칼리의 ‘달은 태양의 꿈이다' / 사진. ©Malika Sqalli
올해 처음 참가한 갤러리 엘리펀트(ELLEPHANT)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나 외면하는 진실을 뜻하는 관용구, ‘방 안의 코끼리’라는 은유 아래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작가를 소개했다. 비주얼 아티스트 스탠리 와니(Stanley Wany)의 연작 ‘바쿨루(Bakulu, 2024-2025)’는 잉크와 커피를 주재료로 역사적 궤적과 개인사의 중첩을 표현한 수작이다.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아프리카계 캐나다인으로서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다.
스탠리 와니의 ‘바쿨루' / 사진. ©ELLEPHANT
2m가 넘는 대형 작품 한가운데 시선을 압도하는 노인의 얼굴은 그의 증조모이자 아프리카 신화 속 신성한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작업 전반에 사용된 커피는 조상과 그 안에 내재된 식민 지배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스탠리는 매체의 유동성을 통제하기보다 종이 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두는데, 이는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예측 불가능성을 수용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술 문명이 가속화될수록 물질성 본연의 감각에 집중하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대변한다. 단순히 시각적 향유를 넘어선 촉각적 경험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밤낮을 잇는 도시 갤러리들
호텔 밖에서도 아트 페어는 계속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제마 엘 프나(Jemaa el-Fnaa) 광장의 복합문화공간 다다(DADA), 부티크 호텔 이자(IZZA), 모로코 예술계의 거물 엘리자베스 보셰 부랄(Elisabeth Bauchet-Bouhlal) 회장의 헌신이 깃든 에스 사디(ES SAADI)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예술 지형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한 알 마덴 아프리카 현대 미술관인 마칼(MACAAL, Museum of African Contemporary Art Al Maaden)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깊은 울림을 일으켰다.
알 마덴 아프리카 현대 미술관인 마칼의 외관 / 사진. ©Ayoub El Bardii
장내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108개의 테라코타 두상 설치작 ‘조각상도 숨을 쉰다(Statues Also Breathe)’는 2014년 치복(Chibok)에서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의해 피랍된 소녀들을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카타르시스 예술 재단(Catharsis Arts Foundation)과 나이지리아 오바페미 아워로워 대학교(Obafemi Awolowo University) 학생들의 협업과, 현장을 찾은 생존자들의 증언은 예술이 국경을 초월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상기시키고 사람들과 공명하게 하는지를 환기하며 장내를 숙연한 침묵으로 채웠다. 미술관 내에서 제일 어둡게 연출된 공간은 파티하 제무리(Fatiha Zemmouri)의 ‘토양에게(To the Soil)’를 위해 할애되었다. 대지의 견고한 생명력과 바람에 흩어지는 가변성을 동시에 품은 아랍어 메시지는 오는 4월 19일까지 진행된다.
알 마덴 아프리카 현대 미술관인 마칼 내 전시된 ‘조각상도 숨을 쉰다' 치복 소녀 108명의 두상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 사진. ©유승주
해가 지고 난 뒤의 마라케시는 신시가지인 겔리즈(Gueliz) 지구를 중심으로 ‘아트 나이트’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갤러리 시니야 28(GALERIE SINIYA 28), 라 갤러리 38(La Galerie 38), 르블라사 아트 스페이스(L’BLASSȦ ART SPACE) 등 인근 갤러리들은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고, 로프트 아트 갤러리의 루프탑도 인파로 북적였다. 유서 깊은 아르데코 건물에 둥지를 튼 콩투아르 데 민 갤러리(COMPTOIR DES MINES GALERIE)에서 만난 야스미나 알라오이(Yasmina Alaoui)의 작품은 프랑스, 모로코, 미국에 걸친 스스로의 다문화성에 대한 탐구를 밀도 있게 담아냈다.
아틀라스 품 안의 창작의 근원
마라케시 메디나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40km 남짓 달리면, 아틀라스 산맥의 웅장한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 타하나우트(Tahanaout)에 닿는다. 해가 갈수록 이곳으로 예술가들이 결집하는 배경에는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고요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자리한다. 아트 페어 기간과 연계해 열리는 작업실 탐방은 전원 속에서 뜻밖의 해방감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내밀한 창작 근간을 직시하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대지의 색을 고스란히 닮은 나지막한 건축물 주변을 호위하듯 서 있는 선인장과 다육식물, 올리브 나무들은 이 토양의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는 듯하다.
타하나우트에 자리한 파티하 제무리의 스튜디오 풍경 / 사진. ©유승주
꽃무늬 자수 조끼를 입고 관람객을 반기는 파티하 제무리의 스튜디오는 한마디로 거대한 실험실과 같았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벽 설치 작품은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단단한 무게감과 고유한 질감을 날것 그대로 발산하며 숭고한 경험을 안긴다. 인접한 곳에 위치한 압데라힘 야무(Abderrahim Yamou)의 작업실 역시 자연을 향한 예술적 경외심이 응축된 공간이다. 카사블랑카 태생인 그의 창의적 표현 중심에는 언제나 식물이 존재하며, 유기적 형태들이 화폭 안에서 끊임없이 증식하고 진화한다. 아티스트 레지던스이자 갤러리, 카페와 레스토랑을 갖춘 알 마캄(AL MAQAM)의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서 작가와 마주 앉아 차를 나누며 작품의 이면을 공유하는 시간은, 마라케시 에디션이 전하는 가장 친밀하고도 따뜻한 환대 그 자체였다.
[좌] 타하나우트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설명 중인 파티하 제무리 [우] 파티하 제무리 스튜디오 지역에서 공수한 흙을 활용한 각종 설치작들 / 사진. ©유승주
마라케시=유승주 아르떼 객원기자
2013년 투리아 엘 글라위(Touria El Glaoui)가 설립한 이래로, 런던, 뉴욕, 마라케시를 순회하며 아프리카 현대 미술에 전념해 온 최초의 국제적 장이다. 아프리카를 구성하는 54개국의 다채로운 예술적 목소리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명칭에 담았다. 제7회 마라케시 에디션은 2월 5일부터 8일까지 ‘라 마무니아(LA MAMOUNIA)’ 호텔을 거점으로 대륙의 동시대적 서사를 확장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윈스턴 처칠과 이브 생 로랑 등 시대의 아이콘들이 사랑했던 라 마무니아는 마라케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장소다. 1-54 마라케시의 시작부터 파트너십을 맺어온 이곳은 야자수와 올리브 숲이 어우러진 아랍·안달루시아 양식의 이국적인 건축미를 배경으로, 아트 페어의 위상을 고도화된 사교와 담론의 장으로 격상시킨다. 호텔 내 전용 컨벤션 공간에 마련된 행사에 전 세계 12개국, 20여 개 갤러리가 모였다.
로프트 아트(LOFT ART), 에이에이(AA), 소 아트(so.art), 엠씨씨(MCC) 등 모로코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7곳의 로컬 갤러리를 비롯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도쿄의 스페이스 엉(space Un)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2년 연속 부스를 차린 스페이스 엉은 카메룬 아티스트 바르텔레미 토구오(Barthélémy Toguo)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 같은 국제적인 교류와 교감의 열기는 개별 부스에서 작가와 직접 대면하는 순간에 이르러 그 정점을 맞이했다.
엠씨씨 갤러리 부스에서 ‘생명력’을 의미하는 옐로 포인트 헤어가 인상적인 말리카 스칼리(Malika Sqalli)를 만났다. 예술가이자 스카이다이버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녀는 자신의 공감각적 체험을 투영한 작품 ‘어디에서 왔나요(Where are you from)’와 ‘달은 태양의 꿈이다(The moon is the dream of the sun)’를 소개했다.
밤낮을 잇는 도시 갤러리들
호텔 밖에서도 아트 페어는 계속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제마 엘 프나(Jemaa el-Fnaa) 광장의 복합문화공간 다다(DADA), 부티크 호텔 이자(IZZA), 모로코 예술계의 거물 엘리자베스 보셰 부랄(Elisabeth Bauchet-Bouhlal) 회장의 헌신이 깃든 에스 사디(ES SAADI)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예술 지형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한 알 마덴 아프리카 현대 미술관인 마칼(MACAAL, Museum of African Contemporary Art Al Maaden)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깊은 울림을 일으켰다.
아틀라스 품 안의 창작의 근원
마라케시 메디나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40km 남짓 달리면, 아틀라스 산맥의 웅장한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 타하나우트(Tahanaout)에 닿는다. 해가 갈수록 이곳으로 예술가들이 결집하는 배경에는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고요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이 자리한다. 아트 페어 기간과 연계해 열리는 작업실 탐방은 전원 속에서 뜻밖의 해방감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내밀한 창작 근간을 직시하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대지의 색을 고스란히 닮은 나지막한 건축물 주변을 호위하듯 서 있는 선인장과 다육식물, 올리브 나무들은 이 토양의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