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여정 끝에 막을 내린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 중 하나는 ‘그게 다 나 때문이야’, ‘나 같은 건 필요 없어’ 같은 자기 목소리가 악에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존감이 낮을 때 두려움에 쉽게 지배받는 심리적 서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주인공들이 빌런인 베크나에 맞서기 위해 궁극적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 또한 내면에서 들려오는 부정적 말들이었다.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 때문에 강력한 자기 비난에 시달렸던 윌은 베크나의 계획 실현에 가장 유용한 통로였다. 하지만 끝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덕분에 스스로를 옭아맸던 두려움을 깨부술 수 있었다.
자기비판과 부정의 말들은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하고 힘이 센지도 모른다. <기묘한 이야기>에서 그려졌듯이 막상 그것들을 꺼내어보면 혼자 생각했던 것보다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나락’의 시대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몰락하는 모습을 점점 더 많이, 빈번하게 보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진짜 잘못을 골라내고, 시스템만으로 구현되지 못하는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다. 일부는 나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인의 감시와 검열이 강하게 작동하는 분위기가 과열될수록 지레 자기 약점이나 단점을 꽁꽁 감추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진다. 윌처럼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고 수용 받을 용기를 내기 어려워질수록 자기비판은 침묵과 자기혐오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약점이라는 신성한 짐
시시때때로 쏘아붙이는 내면의 비판은 앞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까?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는 게 최선일까? 오랜 시간 데시벨 큰 자기 부정의 목소리와 부대끼며 살아온 나는, 피아노 교육자 시모어 번스타인의 책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을 읽고서 생각을 달리할 수 있었다. 그 비판을 억누르거나 지워버리기보다, 그런 의식이 생겨나게 만든 취약한 지점의 정체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이다. 그는 약점 역시 우리가 가진 재능의 일부라고 말한다. 여기서 재능이란 특정한 분야에서 극소수만이 지닌 뛰어난 기량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르다’고 말할 때 그 ‘다름’ 자체다. 그리고 그는 이 재능을 “살아가는 동안 책임져야만 하는 신성한 짐”이라 말한다.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약점은 대개 강점과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이를테면 번스타인은 연주자로서 느끼는 무대 공포와 긴장이 강한 책임감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 역시 유년 시절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의 영향으로 극심한 무대 공포를 오래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초조함을 ‘연주하는 특권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라고 받아들였고, 불안감이 연주를 더 정직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힘이 되도록 전환하고자 했다. 번스타인의 ‘책임을 지라’는 말은 약점이 강점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음악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서, 자신의 약점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일상적인 실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연습’이다.
사실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거의 모든 행위들이 결국 이성, 감정,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을 여러 형태로 결합시킨 것이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성취한 이 세 가지 기능의 차원 높은 결속이 다른 분야에도 옮겨질수가 있어서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어려운 요구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 시모어 번스타인, 백낙정 옮김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 (음악춘추사)
연습이 삶으로 번질 때
번스타인이 말하는 연습이란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훈련이라기보다, 실패와 불안을 안전한 조건 안에서 드러내고 견디면서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을 몸으로 축적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그의 생각은 ‘자기 효능감’ 개념과 맞닿는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의 두 축으로 ‘자기 존중’과 ‘자기 효능감’을 언급했다. 자기 존중이 “나는 행복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라면, 자기 효능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배울 것을 배우고, 스스로 판단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는 ‘과정에 대한 신뢰’다. 전자는 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면, 후자는 반복되는 시도와 경험을 통해서도 길러질 수 있다.
악기 연습은 자기 효능감을 안전한 환경에서 차근차근 쌓을 수 있는 압축판이다. 음악에 대한 느낌과 애정에서 출발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분석을 거쳐, 그 결론을 신체를 통해 구현하려는 시행착오와 실패의 반복 속에서 연주자는 드물더라도 분명하게 “해냈다”는 짜릿함을 느낀다. 그 신호가 쌓이고 또 쌓이면 “나는 어려움에 맞설 수 있다”는 자기 감각으로 이어진다. 번스타인이 말하듯, 삶이 그 사람의 예술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방식과 태도로 예술에 다가가고자 하는지가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번스타인을 랜선생님으로 모시게 한 책. 절판되어 중고로 구매했다. / 사진=필자 제공엄격함을 품위로 바꾼 브람스
자신에게 단점과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긴 시간 붙들어온 결과가 어떤 품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면 브람스가 아닐까. 브람스의 간주곡 Op.118 제2번은 시모어 번스타인의 레퍼토리에서도 자주 연주되는데, 브람스의 후기 작품인 이 곡에는 미묘한 화성적 불안과 성부 간의 엇갈리는 리듬 탓에 은근한 긴장감이 깔려있지만, 그럼에도 평온함을 지탱하는 단단한 힘이 담겨있다.
[브람스 간주곡 Op.118 No.2 (연주: 시모어 번스타인)]
브람스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질을 타고났다. 이성일의 『브람스 평전』에 따르면 어린 시절 딱 한 번 학교에 결석한 일을 두고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라 회고했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라고 해도 적확하지 않다 생각되면 잘 수긍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슈만의 비평 「새로운 길」에서 “음악 예술계에 축복처럼 내려진 ‘메시아’”로 표현된 것에 부담을 느꼈던 브람스에게 오히려 자기 비판적인 성격이 더 짙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말년에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서는 출판되지 않은 자필 악보 가운데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모조리 파기해 버리기도 했다.
요하네스 브람스 / 사진. ⓒ picryl
그럼에도 브람스의 자기비판 능력이 그를 파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적절한 거리두기는 브람스가 작곡을 완성도 높게 완수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그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까지 21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압도적인 기준으로 군림하던 시대, 브람스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라면 발표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교향곡을 단념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 완성될 때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의 교향곡 1번에는 자기비판을 묵묵히 감당하며 그에 맞서 온 한 사람의 21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제1악장 (지휘: 키릴 페트렌코,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인간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러 무뚝뚝하다는 오해를 종종 사기도 했지만, 브람스는 검소하고 겸손했으며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재산 대부분을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해 남겼고, 자신의 유물과 서적, 작품들을 기증했다. 나는 브람스가 임종 직전 남겼다는 짤막한 몇 마디 말들을 좋아한다. 갈증을 달래라며 포도주를 건넨 지인에게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한 뒤, 자신을 바라보던 다른 친구에게 힘겹게 “고맙네, 고맙네!”라고 읊조렸다고 전해진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는 더 이상 어떤 의구심이나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듯, 삶의 끝자락에서 타인을 향한 다정한 감사만 남긴 것이다.
수용의 시대로 함께 건너가기 위해
이전 글에서 쇼팽과 쉼보르스카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했듯이, 자기비판은 가장 인간다운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자기비판 그 자체는 약점도 강점도 아니다. 관건은 그 목소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다. 그 힘은 단번에 생겨나지 않는다. 실패를 견디고, 혼자만의 시간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작은 연습들이 그 근육을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길러준다. 일상에 꾸준히 맞설 도전의 공간을 하나 마련하고, 그 연습을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패와 실수 앞에서도 계속하는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삼아보자. 과정에서 얻는 작지만 분명한 성취는 삶 전반을 지탱하는 자기 믿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신뢰를 쌓여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설익은 단죄 대신 여유와 기다림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