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막했던 프리즈 런던은 개막 직전 깜짝 뉴스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프리즈 아부다비’의 개최입니다. ‘아부다비 아트페어’를 인수해 내년 11월부터는 중동에서도 프리즈를 개최한다는 것입니다. 중동으로 가는 것은 프리즈만이 아닙니다. 이보다 앞서 아트바젤은 ‘아트바젤 도하’를 내년 2월 개최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아트바젤과 프리즈가 나란히 중동으로 확장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이슬람의 나라, 산유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중동이 미술시장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닙니다. 수년 전부터 사우디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유수 미술관의 분관을 유치하거나 설립(루브르 아부다비, 구겐하임 아부다비)했고, 국부펀드는 경매사 소더비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시각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춘 플레이어로 등극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범 중동으로 분류되는 이집트에선 한국 작가가 피라미드 앞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전시 개막에 맞춰 지난 15일 카이로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Forever is Now’ (11월 11일~12월 6일)라는 이집트 카이로의 현대미술제인데, 박종규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강익중 작가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는 한국작가 입니다.

‘Forever is Now’는 약 10여개의 국가에서 참여하며, 피라미드 앞에 사이트를 마련하고 매년 주제에 맞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올해의 키워드는 ‘디지털’과 ‘불멸’인데 ‘디지털 노이즈’를 탐구하는 박종규 작가의 작업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지 매체에서도 관심이 컸습니다.
11월 11일부터 12월 6일까지 이집트 카이로 기자지구 피라미드 앞에선 제 5회 ‘Forever is Now’전이 열린다. 총 10개국 10개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작가 박종규도 초청됐다. 그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11월 11일부터 12월 6일까지 이집트 카이로 기자지구 피라미드 앞에선 제 5회 ‘Forever is Now’전이 열린다. 총 10개국 10개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작가 박종규도 초청됐다. 그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피라미드 앞, 우뚝 선 한국 작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기자지구의 피라미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다른 작가들은 거울이나 반사되는 스테인레스 소재를 활용해 피라미드의 형상을 차용한다면 박종규 작가는 4000여년 전 인간이 달성한 기하학의 정수를 숫자로 치환해 하나의 구조로 구현했습니다. ‘영원의 코드’라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늘 탐구해온 ‘디지털 노이즈’로 피라미드를 해석했습니다.

깨어진 픽셀이나 지워져야 하는 부스러기 정보를 뜻하는 ‘디지털 노이즈’는 박종규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작가는 “디지털 노이즈는 보통 오류나 방해 신호로 보이지만, 저는 그 안에 세상의 근원적 질서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며 “깨진 이미지나 픽셀의 흔적처럼 사라지기 쉬운 데이터를 기하학적 구조로 재조합 함으로써, 인간과 기술 사이에 형성되는 새로운 감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작가는 개인의 숫자(휴대폰, 주민등록번호 등)를 통해 개별화된 기하학적 구조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단순히 ‘피라미드 앞에 설치물’이 아니라 하나의 암호화된 텍스트인 셈입니다.
작품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박종규 작가.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작품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박종규 작가.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박종규 작가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박종규 작가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시간-공간의 컨텍스트 속, 바뀌었으나 바뀌지 않는 의미들

피라미드에 근거하고는 있으나 피라미드는 아닌 ‘영원의 코드’는 4500년이라는 시간이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적 맥락과 너무나 창의적이어서 인간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피라미드라는 문화자산의 맥락, 사막이라는 공간의 컨텍스트 속에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작가는 “피라미드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하학적 구조물이자 거대한 코드”라며 “내가 만든 구조물이 피라미드와 서로 마주 보고 호흡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4500년 전의 기하학적 언어가 현재의 기하학적 언어와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시간의 갭이 존재하지만, ‘지금’이라는 시간의 단면에서 보면 4500년 전부터 지속해온 건물과 불과 1~2주 전에 생성한 ‘영원의 코드’가 현재에 공존하는 셈이니까요.

작품에 설치된 빨강, 파랑, 노랑 천은 고대 이집트에서 각각 생명력과 힘, 하늘과 물, 태양과 영원성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빨강은 강렬한 감정, 경고, 권력을 의미하고 파랑은 안정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색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노랑(황금)은 왕이나 신을 상징하다 이제는 부와 성스러움을 은유하죠. 사회가 바뀌면서 의미도 바뀌나 그 뿌리는 동일합니다. 작가는 “과거-현재-미래가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는 단절되는 듯 지금과 이어지고 또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박종규, 영원의 코드, 밤 풍경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박종규, 영원의 코드, 밤 풍경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

구조물 앞에는 1000개의 아크릴 미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스 부호로 치환한 메시지인데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파라오와 교류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작성한 편지입니다. 한국적 서사와 이집트 고대문명이 만나는 상징적 장치인 셈입니다. 작가는 “마치 우리가 고대 이집트 벽화를 해독하듯, 관객도 ‘이 암호는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과 사유를 느끼길 바란다”며 “작품 전체가 하나의 기록이자 메시지, 하나의 문장”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피라미드 앞에서 놀라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인간이 위대함을 느끼는 부분은 동일하다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혜와 지식, 끈기가 뭉쳐 만들어낸 창조물은 그 자체로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가자지구 사막에서 만난 박종규 작가는 “예술은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를 잇는 가장 오래된 언어”라고 이야기합니다. 디지털과 고대, 순간과 영원처럼 서로 멀어 보이는 세계도 하나의 구조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하면서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나갈 그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박종규 작가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박종규 작가의 작품 ‘영원의 코드’ / 사진제공. Studio J. Park and ENART
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