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된 이야기, 도니체티의 바이올린 선율
[arte] 이준화의 활 끝에서 만난 이야기들
바이올린 작품 속 벨칸토, 도니체티의 또 다른 무대
도니체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즉흥곡
바이올린 작품 속 벨칸토, 도니체티의 또 다른 무대
도니체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즉흥곡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와 함께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자필 악보에 종종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겨두었다. 위의 문장은 도니체티가 작곡한 기악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Piano, A 496)>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다. 이 한 문장 속에서 도니체티가 음악을 ‘삶의 이야기'처럼 빚어냈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오페라로 명성을 얻기 이전의 도니체티는, 작곡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던 시기에 이미 풍부한 감성과 선율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드러냈다. 그는 볼로냐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에 고향 베르가모에 머물며 소나타와 변주곡 등 여러 기악 작품들을 썼다. 도니체티는 이 시기의 작품들을 통해, 이후 그의 오페라에서 드러나는 벨칸토적 감각과 다채로운 감정의 표현을 연습하고 탐구했다. 그래서 초기의 기악 작품들도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 안에서 긴 호흡으로 유려하게 노래하는 그의 음악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중 1819년에 쓰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Piano, A 496)>는 도니체티가 베르가모의 귀족 부인 마리안나 페촐리 그라타롤리(Marianna Pezzoli Grattaroli)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이 곡은 Maestoso와 Allegro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Maestoso는 바단조, Allegro는 바장조로 진행된다.
[도니체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마르코 리찌, 카를로 리찌 형제의 연주)]
Maestoso 부분은 30여 마디의 짧은 서주이지만, 장중한 템포로 흐르는 낭만적인 선율은 뇌리에 깊이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바이올린이 먼저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가 그 선율을 뒤이어 받아 연주한다. 피아노가 주제 선율을 노래할 때 바이올린은 피아노가 반주했던 16분음표의 패시지를 그대로 연주하는데, 서로의 선율을 따라 하며 음악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조화로운 대화를 연상케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두 악기가 마치 질문과 응답을 주고받듯 16분음표의 짧은 패턴을 번갈아가며 연주한다.
깊고 풍부하게 노래되는 Maestoso를 지나 바장조의 Allegro로 들어서면 밝고 생기 있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주제 선율은 명료한 리듬 안에서 우아함을 지니고 있고, 피아노는 촘촘하게 움직이며 생동감을 더한다. 또한, 전체적인 흐름 아래 반복되는 긴장과 해소 덕분에, 음악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이 작품의 자필 악보는 베르가모 도니체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오페라 악보들이 나폴리와 로마 등지의 극장 자료실에 흩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초기 기악 작품의 원본이 그의 고향 베르가모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도니체티의 기악 작품들은 주로 그가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 잡기 이전인 1820년대 초반에 작곡되었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Impromptu for Violin and Piano)>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1837년에 쓰여졌다.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 역시 그의 음악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도니체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 (마르코 리찌, 카를로 리찌 형제의 연주)]
‘즉흥곡(Impromptu)’은 즉흥적인 악상을 풀어낸 형식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던 장르였다. 도니체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은 Larghetto로 시작하는데, 숨죽이며 듣게 되는 도입부는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떠올리게 한다. 말로 감정을 전달하듯 펼쳐내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리듬에 묶이지 않고 섬세한 호흡으로 자유롭게 흐른다.
20여 마디 진행 후 Andantino의 새로운 테마가 등장한다. 셋잇단음표로 경쾌하게 시작되는 이 주제는 Larghetto와는 대조적으로 라장조의 밝고 활기찬 색채를 띠고 있다. 간단한 리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겹점음표, 꾸밈음 등의 사용으로 다채롭고 탄력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 주제가 조금 더 빠른 템포로 변주를 거치고 나서 산뜻한 마무리를 맺는다.
19세기 초반의 오페라 가수들은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선율이나 템포를 변형하거나(예: rit. 나 accel. 등의 사용), 특정 부분을 반복하는 등 자유롭게 연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르코 리찌(Marco Rizzi)와 카를로 리찌(Carlo Rizzi) 형제도 당시의 연주 관습을 반영해 일부 구간에 반복과 변화를 더하며 시대적 감성을 되살렸다.
도니체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은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정서가 담겨 있다. 희극과 비극을 모두 잘 다루던 도니체티는, 기악곡에서도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대비와 유려한 선율미를 보여주었다. 그의 음악은 형식과 장르를 초월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준화 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