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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왜 떠납니까? 인생은 완벽한 농담인데!

[arte]최효안의 압도적 한 문장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쌤앤파커스, 2025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44년을 버틴 코미디언 이경규의 통찰
책을 열면 저자 소개 옆에 이경규 친필로 추정되는 문장이 싸인처럼 인쇄되어 있다. “박수칠 때 왜 떠납니까?”

이 말은 2022년 한 지상파 시상식에서 이경규가 공로상을 받고 수상 소감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는 “많은 분들이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얘기한다. 정신 나간 놈이다. 박수칠 때 왜 떠나냐.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겠다”고 얘기하며 화제를 모았다. 뭔가 절정의 순간에서 홀연히 내려오는 것을 뭔가 멋지게 여기는 일부의 고정관념을 강타하는 일갈이었다.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이경규 '공로상' 수상 소감 / 사진출처. MBCentertainment YouTube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이경규 '공로상' 수상 소감 / 사진출처. MBCentertainment YouTube
[관련 영상 보기] ▶▶▶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이경규 '공로상' 수상!, MBC 221229 방송

이경규는 1981년 MBC 라디오 개그콘테스트에서 인기상을 받으며 데뷔해 2025년 현재까지 무려 44년째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코미디언이다. 이 책은 ‘예능 대부’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그의 첫 책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그러나 촌철살인의 삶의 지혜가 촘촘해 밀도가 두텁다. 최고로 꼽히는 개그맨답게 위트와 유머가 적절히 녹아있으면서도 삶의 페이소스가 묻어 나는 그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책 출간 뒤인 지난 6월 처방 약 복용 후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되어 불구속 송치됐다. 그는 “공황장애 약을 먹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대중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험난한 연예계에서 수십 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했던 그에게도 ‘삶이란 언제나 완벽한 농담’처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소확행 말고 대확행

이 책에서 압도적 한 문장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소제목인 ‘소확행 말고 대확행’에 나온 문장이다. 최근 몇 년 소확행이 꽤 유행이었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자’는 소확행에 대해, 이경규는 소확행 너머 행복의 진짜 본질을 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정말 큰 행복이 있는데 그걸 미처 못 보고 소소한 행복에 의미 부여 하는 세태를 꿰뚫는 명민함이 놀랍다.

“몇 년 전부터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이라는데, 나는 더 큰 행복, 대확행을 말하고 싶다. 예컨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맛있다면 소확행이겠지만, 엄마가 계시다는 것 자체는 더 큰 행복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은 더 잘 안다. 커다란 행복이 있어야 작은 행복들이 낙수효과처럼 떨어지는 법이다”

-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지닌 직업, 건강 등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 애태우며 노력했던 시간은 잊는다. 건강은 더욱 그렇다. 건강한 상태를 디폴트값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나이 들 듯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어느 순간이 되면 작별의 순간도 온다. 부모님이 모두 작고한 이경규는 그저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절하게 깨달은 것이다.

딸이 축구선수랑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난 어느 팀인지 묻지 않았다. 그가 축구선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코미디언인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성공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더 큰 행복이다.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만일 이경규가 성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생의 업인 코미디언이란 직업의 소중함을 경시했다면 44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인기’라는 보이지 않는 신기루만을 중시했다면, 그는 인기가 떨어진 순간 코미디언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기가 없을 때도 자신이 코미디언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고, 지상파에서 케이블, 종편, 그리고 OTT, 그리고 유튜브까지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제일 먼저 달려갔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너무 쉽게 잊는다. 살아 있다는 것, 일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소확행 보다도 크고 확실한 행복이다. 그러니 소확 행을 쫓느라 대확행을 놓치지 말자. 소확행은 저절로 따라오게 만들자.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사진출처. unsplash
사진출처. unsplash
최선을 다하지 마라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는 통념에도 이경규는 허를 찌른다.

지금 무언가에 100%를 쏟고 있는가? 잠시 멈춰보라. 70%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나머지 30% 를 비축해 둬야 번아웃을 피할 수 있다. 잘 모르는 것은 만약을 위해 아껴 두는 것, 그것이 사회인의 지혜다.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그렇지만 그렇게 70%만 전념할 때의 자세도 잊지 않는다.

매번 가진 것을 전부 소진해 버리면 오래가기 어렵다. 그래도 남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소리를 탱자 탱자 게으름뱅이가 되라는 것으로 착각하면 큰일 난다.

-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그와 같이 데뷔했던 코미디언들은 이미 수십 년 전 대중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혔지만, 그는 지금도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코미디언이다. 그는 자신 있게 얘기한다. 살아남아야 승자라고!

진정한 승리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하는 힘에서 나온다. 코앞의 이익에 목숨을 걸지 말자, 살아남는 사람, 마지막까지 남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승자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유종의 미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공감 갔던 한 문장이 바로 “유종의 미는 없다”였다. 나부터도 마지막 마무리는 뭔가 좀 좋고 아름답고 멋지게 끝내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이란 과정이 전부다. 그 과정에선 별별 일이 다 생긴다. 그게 바로 인생의 본질이다. 한 직장을 마무리 짓거나, 친구 관계를 정리하거나, 모임이 해산하거나 등등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인생사의 필연임에도 우리는 끝을 뭔가 그럴듯하게 끝내는 것에 집착한다.

왜 끝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할까? 해피엔딩, 명예퇴직, 유종의 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수식어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면 끝이 오기 전에 끝이라서가 아닌, 진짜 아름다움을 만들어보자.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끝나면 그저 끝인 것,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꼽은 한 문장은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바로 이 문장이었다.

태어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견뎌내는 것도 모두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인생에 자연스럽게 왔다가 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경규,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중에서
이경규 에세이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쌤앤파커스, 2025.
이경규 에세이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쌤앤파커스, 2025.
최효안 북 칼럼니스트/디아젠다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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