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에펠탑은 올해도 어김없이 핑크빛으로 빛난다. 매년 2014년부터 이어져 온 이 전통에 따라 평소 황금빛으로 빛나던 에펠탑이 이날만큼은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핑크빛으로 변신한다. 특히 매시간 첫 5분 동안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빛을 더한다. 에펠탑이 이날 핑크색으로 물드는 이유는 바로 10월 한 달간 진행되는 핑크 옥토버(Pink October) 캠페인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핑크빛으로 빛나는 에펠탑 전경. 핑크 옥토버 캠페인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은 매년 9월 30일, 핑크빛으로 변신한다. / 사진. © SETE- Jerôme Schlichter
핑크빛으로 빛나는 에펠탑 전경. 핑크 옥토버 캠페인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은 매년 9월 30일, 핑크빛으로 변신한다. / 사진. © SETE- Jerôme Schlichter
핑크빛의 10월, 유방암 인식의 달

핑크 옥토버는 매년 10월, 전 세계에서 진행하는 유방암 인식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모든 여성에게 유방암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고, 예방과 조기 발견을 통해 사망률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기 검진은 완치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잠재적인 이상이나 악성 종양을 초기에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핑크 옥토버는 여성들에게 정기적인 검진을 장려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1993년, 유방암 생존자인 에블린 로더(Evelyn Lauder)는 유방암 연구 재단(Breast Cancer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여 암 치료 연구를 지원했으며, 그때부터 10월은 공식적으로 유방암 인식의 달로 자리 잡았다. 이 캠페인의 상징인 핑크 리본은 이제 유방암 퇴치의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Estée Lauder Companies)는 전 세계에 1억 개가 넘는 핑크 리본을 무료로 배포했다.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강인함과 긍정을 상징하는 핑크 리본은 매년 10월, 프랑스 전역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유방암과의 싸움에 희망을 더한다.

브래지어를 벗어 던진 순간 시작된 가슴 혁명

여성의 가슴은 오랫동안 여성성을 상징해왔다. 고대 문명에서 풍만한 여성의 가슴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또한 알제리의 타실리 나제르(Tassili n'Ajjer) 선사시대 암벽화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특징으로 가슴이 등장한다.
[좌] 타실리 나제르 선사시대 암벽화 (알제리) / 사진. © Patrick Gruban/Wikimedia [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오스트리아) / 사진. ©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좌] 타실리 나제르 선사시대 암벽화 (알제리) / 사진. © Patrick Gruban/Wikimedia [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오스트리아) / 사진. ©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1960년대, 여성 인권과 해방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부터 가슴의 자유를 외치는 움직임은 조금씩 세상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8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시작된 페미니스트 그룹 페멘(Femen)은 여전히 여성의 가슴 노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지 않음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 놓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상반신을 노출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마리안느는 강인한 여성상으로 깃발을 휘둘리며 가슴을 드러내고 도시를 구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가슴 혁명 운동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페멘 로고 / 출처. Wikipedia
페멘 로고 / 출처. Wikipedia
여행지에서도 가슴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더블린에서는 아일랜드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인 몰리 말론 청동상의 가슴을 만지는 행동을 막기 위해 올해 3월부터 동상 보호 조치를 취했다. 이는 단순한 관광객의 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관행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몰리 말론의 가슴은 지금 완전히 변색된 상태이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몽마르트르의 프랑스 가수 달리다(Dalida)의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 때문에 가슴을 만지지만, 이별과 비극, 그리고 자살로 끝나버린 달리다의 삶을 떠올리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더블린 세인트 앤드루스 거리의 몰리 말론 동상 / 출처. Wikipedia
더블린 세인트 앤드루스 거리의 몰리 말론 동상 / 출처. Wikipedia
[좌]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의 달리다 동상 / 사진. © Pascal Lefevre [우]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 출처. Wikipedia
[좌]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의 달리다 동상 / 사진. © Pascal Lefevre [우]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 출처. Wikipedia
예술 속의 가슴

여성의 가슴은 임신과 출산, 모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 자매의 초상화가 그 대표적인 예로, 그림 속에서 여동생은 언니의 가슴을 꼬집듯이 가리키는데 이는 가브리엘이 프랑스 국왕인 남편 헨리 4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나타낸다.
작가미상 (에콜 드 퐁텐블로 XVI)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의 초상>(1594) / 출처. Wikimedia Commons
작가미상 (에콜 드 퐁텐블로 XVI)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의 초상>(1594) / 출처. Wikimedia Commons
여성의 가슴은 또한 관능미와 욕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에두아르 마네의 <누드의 금발 여성>은 인상주의적인 감각과 관능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과 인간 신체의 섬세함을 탐구하며, 관객에게 몰입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반대로,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모습으로 재해석한 에드바르 뭉크의 <마돈나>는 욕망, 생명력,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황홀경에 빠진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성(性)에 대해 느낀 불안과 매혹을 드러내며, 성스러움과 세속성이 충돌하는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다.
에두아르 마네 <누드의 금발 여성>(1878년 경) / 사진. © Borre Hostland, The National Museum of Norway
에두아르 마네 <누드의 금발 여성>(1878년 경) / 사진. © Borre Hostland, The National Museum of Norway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1894-1895년경) / 사진. © Munch Museum, Oslo (Norway)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1894-1895년경) / 사진. © Munch Museum, Oslo (Norway)
또한 파블로 피카소의 <공을 가지고 노는 목욕하는 여자들>은 큐비즘 기법을 통해 인간 신체의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가슴을 기하학적 형태와 다면적 시점으로 표현해 신체의 해방감과 즐거움을 시각적으로 전한다. 뾰족한 가슴은 장 폴 고티에의 콘 브라(Cone Bra)를 연상케 한다.
파블로 피카소 <공을 가지고 노는 목욕하는 여자들>(1928년) / Grand Palais (피카소 박물관), Adrien Didierjean / 사진. © Succession Picasso 2022
파블로 피카소 <공을 가지고 노는 목욕하는 여자들>(1928년) / Grand Palais (피카소 박물관), Adrien Didierjean / 사진. © Succession Picasso 2022
패션 속의 가슴

가슴을 강조한 원뿔형 콘 브라는 최근 SNS에서 뜨거운 패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파리에서 열린 미우미우의 2025 가을/겨울 런웨이에서도 1950년대 마릴린 먼로와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입던 총알 브래지어(Bullet Bras)가 다시 돌아왔다.

1984년 장 폴 고티에는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처음 콘 브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였다. 그리고 1990년, 마돈나의 블론드 엠비션(Blond Ambition) 월드 투어에서 고티에의 콘 브라는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마돈나는 검은색 코르셋 콘 브라를 착용하고 무대에 등장했다. 콘 브라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서 여성의 성적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강렬한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2023년, 고티에는 Y/Project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에서 유머와 유혹의 경계를 넘나들며 트롱프뢰유 프린트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려는 메시지를 또 한 번 전달했다.

10월 유방암 인식의 달을 맞이해 여성 건강과 '가슴 혁명'이 여성의 권리 신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좌] 장 폴 고티에, 오렌지 벨벳 콘 브라 뷔스티에 드레스(1984년) / 사진. courtesy The Museum at FIT [우] 장 폴 고티에 × Y/Project 캡슐 컬렉션 / 사진. © Jean Paul Gaultier × Y/Project
[좌] 장 폴 고티에, 오렌지 벨벳 콘 브라 뷔스티에 드레스(1984년) / 사진. courtesy The Museum at FIT [우] 장 폴 고티에 × Y/Project 캡슐 컬렉션 / 사진. © Jean Paul Gaultier × Y/Project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