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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 지우지마" 트럼프 엄포에 '백기'…기업들 '공포' [임다연의 메인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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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갈등에 고객 잃을 판"
    기업들 'WOKE 리스크' 공포
    크래커배럴 기존 로고가 그려진 전광판. (사진=X 캡처)
    크래커배럴 기존 로고가 그려진 전광판. (사진=X 캡처)
    미국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크래커배럴이 창립 50여년 만에 단행하려던 브랜드 로고 개편을 포기했습니다. 새 로고 공개 직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이 확산한 탓입니다.

    최근 미국 청바지 브랜드 아메리칸이글을 둘러싼 논란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안 역시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워크(WOKE·깨어있음) 이슈’와 맞닿아 있습니다.

    갈라진 소비시장호되게 당한 크래커배럴

    크래커배럴은 2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새 로고가 가고 ‘올드타이머’가 돌아왔다”며 로고 변경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발표 불과 일주일 만에 이뤄진 백지화입니다. 크래커배럴의 기존 로고에는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나무통(배럴)에 기대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인물이 바로 ‘올드타이머’입니다.

    앞서 지난 19일 크래커배럴은 이 남성 캐릭터와 ‘올드컨트리스토어’ 문구를 삭제하고 노란색 배경 위에 브랜드명만 남긴 새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의 영향이 아니냐”는 의혹이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제기됐고, SNS에서 반발이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크래커배럴의 기존 로고(위)와 지난 19일 공개한 새 로고(아래). (사진=X 캡처)
    크래커배럴의 기존 로고(위)와 지난 19일 공개한 새 로고(아래). (사진=X 캡처)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지나치게 전통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었습니다. 새 로고가 발표된 당일 회사 주가는 장중 14% 이상 급락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이 결정타가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크래커배럴은 기존 로고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고객 반응에 따라 실수를 인정하고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크래커배럴은 곧바로 백악관에 기존 로고 복귀 방침을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SNS를 통해 “팬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 미래에 행운을 빈다”며 “돈도 많이 벌고 무엇보다 고객을 행복하게 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회사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약 7% 추가 상승했습니다.

    얼마 전 아메리칸이글은 반대로 진보 진영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파란 눈을 가진 미국 유명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광고에 출연해 "유전자(genes)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달돼 머리색, 성격, 눈 색깔까지 결정한다. 내 진(jeans)은 파란색이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지난 1일 미국 뉴욕의 아메리칸이글 매장에 유명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등장한 캠페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 포스터에는
    지난 1일 미국 뉴욕의 아메리칸이글 매장에 유명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등장한 캠페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 포스터에는 "시드니 스위니는 훌륭한 청바지를 가졌다(Sydney Sweeney has great jeans)"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AP)
    광고는 "시드니 스위니는 훌륭한 '진'을 가졌다"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청바지(jeans)와 유전자(genes)의 발음을 교차시킨 이 연출이 우생학과 백인 우월주의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경쟁사 갭(Gap)은 곧바로 필리핀, 한국, 스위스, 미국 출신의 멤버로 구성된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를 앞세운 광고 캠페인을 내세우며 '더 나은 청바지(Better In Denim)'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메리칸이글을 정면 겨냥했습니다. 이 전략은 케이팝 팬들까지 흡수하며 소비층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가 참여한 갭(Gap)의 데님 캠페인. (사진=X 캡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가 참여한 갭(Gap)의 데님 캠페인. (사진=X 캡처)

    "충성 고객 잃으면 끝"버드라이트가 남긴 교훈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로고나 광고 문구 논란을 넘어 기업들이 ‘WOKE’ 이슈와 관련해 곤혹스러운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깨어있지 않음’을 문제 삼는 진보 소비자들과 ‘과도한 깨어있음’에 피로감을 느낀 보수 소비자들이 서로 날을 세우며, 기업들은 양쪽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자신들의 핵심 소비층을 정확히 파악하고,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변화를 주는 마케팅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리처드 스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버드라이트 사례에서 보듯 충성 고객과 브랜드 정체성을 버리는 방식으로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크래커배럴 사태도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말했합니다.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와 특별 제작된 버드라이트 캔맥주.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와 특별 제작된 버드라이트 캔맥주.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버드라이트는 20년 넘게 미국 맥주 시장 1위를 지켜왔지만, 2023년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논란 이후 불매 운동이 확산하며 3위로 추락했습니다. 한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위해 특별 제작된 버드라이트 캔을 공개한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주요 소비층인 중장년 남성들이 대거 등을 돌리면서 브랜드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번 크래커배럴과 아메리칸이글 사태는 '분열의 시대에 기업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냉혹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소비 시장으로 번져드는 지금,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계산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듯합니다.

    월스트리트(금융시장)의 숫자가 말해주지 못하는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미국 경제의 생생한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 주세요.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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