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 출신의 화가 프랑수아 자비에 파브르는 1825년 자신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파브르 미술관(Musée Fabre)을 고향에 설립했다. 올해 미술관 창립 200주년을 맞아, 작가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의 작품을 초대하는 특별 전시 <피에르 술라주, 만남>이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2022년 작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1000m²가 넘는 기획 전시 공간과 술라주 상설 전시실의 세 개 층에 나누어 총 120점에 이르는 회화, 구리, 청동, 유리 작품이 소개되었고 2026년 1월 4일까지 이어진다.

술라주의 작품은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렘브란트, 쿠르베, 세잔, 반 고흐, 몬드리안, 피카소, 앙스 아르퉁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어, 그의 예술 세계를 과거와 현재, 전통과 실험이라는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술라주는 초기부터 힘찬 붓질과 숯검정 같은 짙은 블랙 색조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이번 전시는 빛과 그림자, 매끄러움과 거침, 무광과 유광이 공존하는, 모순된 요소들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작업을 직접 감상할 소중한 기회이다.
Michel Dieuzaide, Pierre 와 Colette Soulages 부부, 1988 / 사진. © Musée Soulages, Rodez, Thierry Estadie / © Adagp, Paris, 2025
Michel Dieuzaide, Pierre 와 Colette Soulages 부부, 1988 / 사진. © Musée Soulages, Rodez, Thierry Estadie / © Adagp, Paris, 2025
파브르 미술관과의 만남

1919년 프랑스 로데즈(Rodez)에서 태어난 피에르 술라주는, 그의 이름을 딴 대형 미술관이 2014년 로데즈에 세워질 만큼 깊은 존경을 받는 예술가이다. 1941년에는 몽펠리에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 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며 이 도시에 머물렀고, 그때부터 파브르 미술관과 특별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미술관보다도 파브르 미술관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 피에르 술라주

2005년, 술라주는 파브르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20점을 기증하고 10점을 장기 대여하였다. 이는 현재 미술관 내 술라주 전용관(Aile Soulages)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을 넘어, 예술가 술라주와 파브르 미술관 사이의 깊고 오랜 인연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자리이기도 하다.

어둠과 검은색 속에서 색과 빛을 찾은 술라주의 예술 여정

술라주는 2022년, 향년 102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 마지막 해인 2020, 2021년에 제작한 미공개 작품 두 점으로 문을 연다.

전시는 총 6개의 테마 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45년 초기 작품 구성(Composition)부터 우트르누아(Outrenoir) 시기의 말년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작 여정을 시대별, 주제별로 보여준다.
[좌] Pierre Soulages, 1958, © Musée Soulages, Rodez, 사진. Vincent Cunillère / © Adagp, Paris, 2025 [우] Pierre Soulages, Collection C. S. / 사진. © Vincent Cunillère © Adagp, Paris, 2025
[좌] Pierre Soulages, 1958, © Musée Soulages, Rodez, 사진. Vincent Cunillère / © Adagp, Paris, 2025 [우] Pierre Soulages, Collection C. S. / 사진. © Vincent Cunillère © Adagp, Paris, 2025
전시 테마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건축적인 구조감을 지닌 초기의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이 작품들은 강한 에너지와 조형적 긴장감을 드러내며, 술라주 예술 세계의 출발점을 힘차게 보여준다.

<조형적 침묵과 글쓰기> 섹션에서는 심볼, 흔적, 침묵의 미학을 다루었고, <이 격렬한 색채> 섹션에서는 빛과 어둠의 교차점인 황혼의 명암 대비의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림자의 화가 반 고흐는 야경 속 풍경을 표현하면서, 두터운 붓질과 극적인 명암 대비로 어둠 속의 붉은 하늘을 그려냈다. 술라주는 십 대 시절 책을 통해 처음 반 고흐의 작품을 접했고, 이후 오랫동안 그의 예술에 매료되어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Pierre Soulages, 1951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Grand PalaisRmn / image Centre Pompidou, MNAM-CCI © Adagp, Paris, 2025.
Pierre Soulages, 1951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Grand PalaisRmn / image Centre Pompidou, MNAM-CCI © Adagp, Paris, 2025.
빈센트 반 고흐, 일몰 풍경, 1885 / 그림. ©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빈센트 반 고흐, 일몰 풍경, 1885 / 그림. ©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구성 중 하나는 1950년대 후반에 제작된 작품들로 짙은 검은색 아래로 붉은색이나 파란색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색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술라주의 작업 기법과 회화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는 술라주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과, 검정이라는 색을 통해 빛과 깊이, 감정을 드러내려 했던 그의 회화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술라주는 먼저 캔버스에 색을 칠한 뒤, 그 위를 검은색으로 완전히 덮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크레파스로 여러 색을 칠한 뒤 검은색을 덧칠하고, 그 위를 긁어내어 아래 색을 드러내는 스크래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검정은 단순히 색을 가리는 덮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아래 숨겨진 색을 특정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가려진 색이 빛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은은하게 드러나며, 깊이와 감정, 색과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가죽 주걱을 눌러 긁는 압력과 기울기 각도에 따라, 색을 남기기도 하고 걷어내기도 합니다.” - 전시 큐레이터 미셸 일레르(Michel Hilaire)
Pierre Soulages, 1959, © Musée Fabre, 사진 Frédéric Jaulmes / © Adagp, Paris, 2025
Pierre Soulages, 1959, © Musée Fabre, 사진 Frédéric Jaulmes / © Adagp, Paris, 2025
검은색과 빛이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인 것처럼, 검은색 뒤에 숨겨진 흰색과 투명한 부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술라주는 검정을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빛과 깊이를 동시에 표현하는 특별한 도구로 사용하여 그만의 회화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회화를 단순한 평면 그림이 아닌 공간으로 보았고, 색으로 만들어진 공간과 빛, 그리고 건축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Pierre Soulages, 2000, © Musée Soulages, Rodez, 사진 Thierry Estadieu / © Adagp, Paris, 2025
Pierre Soulages, 2000, © Musée Soulages, Rodez, 사진 Thierry Estadieu / © Adagp, Paris, 2025
Pierre Soulages, 2008, Collection C. S. 사진 Vincent Cunillère © Adagp, Paris, 2025
Pierre Soulages, 2008, Collection C. S. 사진 Vincent Cunillère © Adagp, Paris, 2025
전시와 함께 제공되는 가상현실(VR) 몰입형 체험에서는 약 12분 동안 술라주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어둠과 빛이 어우러지는 시적인 예술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배우이자 술라주의 친구인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의 강렬한 목소리 해설과 더불어, 작가 본인의 음성 녹음도 함께 들을 수 있어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가상현실(VR) 몰입형 체험 / 사진. © 디자인 Gordon / 제작 Lucid Realities
가상현실(VR) 몰입형 체험 / 사진. © 디자인 Gordon / 제작 Lucid Realities
가상현실(VR) 몰입형 체험 / 사진. © 디자인 Gordon / 제작 Lucid Realities
가상현실(VR) 몰입형 체험 / 사진. © 디자인 Gordon / 제작 Lucid Realities
몽펠리에=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Musée Fabre
39, boulevard Bonne Nouvelle
34000 Montpell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