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가 떠난 뒤, 남겨진 자들은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는가?

기억은 사진이나 유품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움직임 속에 살아있는 시간으로 각인되어 흐르기도 한다. 도리스 되리의 독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과 델핀 르에리시의 프랑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2022)는 공통적으로 사별 뒤의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별의 주체는 노부부이며 남겨진 쪽은 남편들이다. 그들은 떠나간 아내를 기억하고 불러내기 위해 춤을 춘다. 이때 그들의 몸은 단순한 매개(medium)가 아니다. 몸은 기억을 보존하는 저장소로,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한 기억의 사원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이 두 편의 영화는 상실과 애도, 기억의 방법론으로서의 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남편 루디 잉게마이어(엘마어 베퍼 扮)의 시한부 진단 앞에서 조용히 절망하는 아내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 扮)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루디에게 차마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던 트루디는 남편의 마지막을 정리할 겸 베를린에 사는 자식들을 보러 가자고 권한다. 하지만 장남 클라우스(펠릭스 에이트너 扮)와 차녀 카롤린(비르기트 미니히마이어 扮)은 바쁜 일상 중 갑자기 나타난 부모를 반기지 않고, 오직 카롤린의 동성 파트너인 프란치(나디아 울 扮)만이 노부부를 살뜰히 챙긴다.

오즈 야스지로의 걸작 <동경 이야기>(1953)를 오마주한 이 대도시에서의 소외와 방치는, 훌쩍 자라 삶의 장벽을 굳건히 세워버린 자식들과 오도 가도 못하는 나이 든 부모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극도의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루디와 트루디 부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베를린을 떠나 근교의 바닷가로 향한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발생한다. 루디가 아니라 트루디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항상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아내의 죽음은 루디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내가 진정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관심을 쏟아본 적 없다는 뼈아픈 자각이 루디를 무너뜨린다. 그 와중에 프란치가 트루디 평생의 꿈이 부토 무용수가 되는 것이었음을 들었다고 말해주자, 루디는 트루디의 옷을 트렁크 한가득 챙겨 도쿄로 향한다. 아내 대신 아내가 되어 일본에 가고, 아내가 보고 싶어 했던 후지산을 보고, 아내가 추고 싶어 했던 부토에 대해 알기 위해서.

일본의 부토는 단순한 무용이 아니다. 부토는 전후 일본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와 억압된 감정을 신체로 표출하기 위해 기존의 무용 양식을 거부하며 시작된 일종의 저항이었다. 부토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얼굴과 목에 흰 분칠을 한 무용수가 극도로 느리게 움직이며 일그러진 형태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감수성을, 신체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여 탐험하고 변형시키는 움직임이 바로 부토다. 죽음을 재현하는 한편 지극히 정적인 현존을 드러내는 이 정신적인 춤을 일본인 소녀 유(이리즈키 아야 扮)는 ‘죽은 자의 그림자를 불러내는 그림자의 춤’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루디는 양복 코트 안에 트루디의 옷을 껴입고, 유를 안내자 삼아 천천히 부토에 발을 들인다. 유에게 부토가 돌아가신 엄마와의 송수신 행위라면 루디에게 부토는 트루디 ‘되기’(becoming)의 일환이다. 들뢰즈는 기존의 배치에서 벗어나 다른 삶, 다른 존재 방식,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는 울타리 바깥으로 건너가는 것을 ‘되기’라고 규정했다. 자기 자신이기를 멈추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되기’는 차이를 가로지르는 실천적 활동이며 루디의 경우 그것은 아내의 옷을 입고 아내가 갈망했던 춤인 부토를 추면서 이루어진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그 자신의 루틴에 갇혀 평생을 흘려보냈던 무심한 가장 루디는, 삶의 황혼에서 조금씩 트루디라는 기억을, 사랑했던 그녀를 제 몸으로 불러들인다. 막내아들 칼(막시밀리언 브뤼크너 扮)에게 토로했던 단절의 고통(“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그 몸이 어디 있는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내 몸 안에 있어. 근데 내 몸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어디 있게 되지?”)은 부토를 통한 아내 되기로 완화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의 주인공 제르맹(프랑수아 베를레앙 扮)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영화 초반 사랑하는 아내 리즈(도미니크 레이몽 扮)를 잃은 건 마찬가지지만, 제르맹의 자식들은 홀로 된 아버지를 절대 혼자 놔두지 않으려고 시간표를 짜 교대로 방문하고 이웃까지 동원해가며 열성이니 말이다. 아내 리즈는 살아생전 유명 현대무용가 라 리보트의 신작 공연에서 비전문 무용수로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르맹은 리즈의 뒤를 이어 연습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남편이 춤을 통해 그녀의 세계에 들어와 보길 바란다는 말이 리즈가 남긴 마지막 소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집 센 제르맹은 자식들에게 춤을 추러 다닌다고 밝히고 싶지 않다. 자식들은 혈압 문제로 제르맹의 무용 연습을 반대하려 들 것이 분명하며, 레깅스를 입고 웃통을 벗은 모습을 보이는 일도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제르맹이 자식들을 피해 알리바이를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주며, 초심자가 현대무용이라는 낯선 장르에 차차 익숙해져가는 과정 또한 현실적으로 제시한다. 한편 안무가 라 리보트는 움직임에 일가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유지를 받들어 무용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제르맹에게서 영감을 얻어 작품의 방향을 대폭 수정한다. 제르맹과 리즈의 이야기는 더 이상 둘만의 추억이 아니라 춤 그 자체가 되어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된다.
당신이 떠난 뒤,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제르맹에게는 춤 이외에도 아내와 접속하게 해주는 또 다른 매개가 있다. 영화 초반부터 제르맹은 도서관 서가 G열에 꽂힌 책들의 25쪽마다 리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겨왔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되는 편지 말이다. 맨 처음 도서관에서 만났을 당시 리즈와 제르맹은 각자의 나이였던 22쪽과 25쪽마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꽂아두며 교제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떠난 뒤,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영화는 가장 원초적이고 불변적인 기억저장 매체인 문자의 기능을 상기시키며 춤과 언어라는 두 가지 기억의 방법론을 병존시킨다. 지속적으로 되돌아가 그 순간의 대기를 그대로 소환시킬 수 있는 문자와 달리, 춤은 시간 속에서 반복되며 매 순간마다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덧입는다. 이는 현대무용의 특성 때문이다. 현대무용은 공연예술의 특성상 일회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특이성(singularity)이 개입된다. 특이성이란 매 공연이 같은 안무를 반복하더라도 시간과 장소, 무용수의 신체 조건에 따라 결코 완벽하게 동일한 경험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무대의 공기, 댄서의 숨결, 순간의 빛이 매번 다른 공연을 만들어낸다.

리쾨르의 ‘재서술(refiguration)’은 이처럼 반복을 통해 기억이 새로운 의미로 다시 쓰인다는 개념이다. 제르맹이 춤을 출 때마다 리즈의 페이지는 몸짓언어로 매번 새롭게 다시 쓰인다. 제르맹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여기(무대에) 있는 동안만큼은 당신과 함께야. 하지만 조명이 꺼지면 당신을 보내줘야겠지. 당신은 어떤 기억으로 내게 남을까. 쉽진 않을 거야. 하지만 당신은 함께 있어. 내 몸짓과 다른 댄서들의 움직임 속에.”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항상 새롭게 호출되며 무대 위에서 영원한 현재로 소환된다.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사진과 영상, 문자는 각각의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지만, 그 순간에 새겨진 감각까지 보존하지는 못한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춤을 통해 사랑의 기억과 사랑하는 이의 몸을 되살려내며, 춤으로 신체의 필연적인 사멸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루디의 부토와 제르맹의 현대무용은 단순히 죽은 이를 애도하는 몸짓이 아니다. 그들은 ‘되기’와 ‘다시 쓰기’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생의 너머로부터 반복적으로 불러내며 상실의 시간에 저항한다.

춤을 추는 순간마다 당신은 내 몸속에 다시 살아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나는 다시 만난다.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내 몸에 깃들기 시작한 당신, 사랑하는 당신. 루디는 부토를 추며 트루디가 못다 이룬 꿈을 살아내고, 제르맹이 무대에서 춤출 때마다 리즈는 그 순간에 실려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제르맹과 루디는 기억의 아카이브에 새로운 현재를 새겨 넣는 창조적인 주체가 된다. 이때의 춤은 생사의 단절을 극복하는 통로이자 부재하는 이가 꿈꾸던 세계를 대신 체험하는 수단, 기억을 재구성하는 기록매체로 거듭난다.

결국 기억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갱신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 후에 남겨지는 것들이 고독이나 상실만은 아니다. 매 순간 새롭게 써내려가는 현재적 시간, 두 존재의 합일과 확장, 몸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는 한, 사랑하는 당신은 언제나 돌아오기 위한 스텝을 밟고 있다.

이태인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예고편]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