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일상 코미디
후지산 배경으로 작은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방인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
매일 함께 근무하지만 딱히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가 있다. 그가 어느 날 나를 따로 불러대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뭔 수작인가 싶은 순간, 그가 10엔 동전을 꺼내 손가락으로 단번에 우그러뜨린다. 그리고 툴툴대듯이 한마디 한다면?
“사실은 말이야. 내가 외계인이거든.”
어찌 반응해야 할까. 살짝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가 평범한 50대 남성, 즉 ‘가장 외계인 같지 않은 사람’이란 점이다. 줄어드는 머리숱이 고민이고, 옛날 과자 취향을 남들이 몰라주면 속상해하는 동네 아저씨. 내가 못 믿겠다고 답하면, 그는 더 특별한 능력도 보여줄 것이다. 냄새로 물건 찾아내기, 먼 곳의 대화 엿듣기 같은.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스틸컷 / 사진출처. hotspot_ntv 인스타그램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스틸컷 / 사진출처. hotspot_ntv 인스타그램
넷플릭스에 공개된 닛폰TV의 10부작, ‘핫스팟(the Hot spot) (일본 제목 ホットスポット)’은 SF를 표방하지만, 지구 침공이나 행성 전쟁 같은 대형 스펙터클은커녕 UFO 한 대도 안 보여주는 코미디 드라마다. 외계인이란 이웃과 어쩌다 엮인 지구인들의 일상이 드라마의 진짜 관심사다.
후지산 앞 호숫가의 작은 비즈니스호텔에서 근무하는 키요미(이치카와 미카코). 퇴근하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순간, 수수께끼의 남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그녀를 구한다. 그의 정체는 호텔 프런트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타카하시(가쿠다 아키히로)였다. 어찌 된 일인지 이 시골 동네에 몰래 살고 있던 외계인.
키요미는 타카하시의 정체를 비밀에 부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새 타카하시는 호텔의 소소한 사건 사고에 이어, 키요미의 절친과 동네 사람들의 제법 큰 고민거리에도 나서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학교 체육관 천장에 끼어있는 배구공을 빼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웃들은 온갖 꼼수를 동원하며 타카하시를 지키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 어쩌면 타카하시보다 더 특별한 것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핫스팟>은 태연하게 이들을 스쳐 지나간다. (타카하시의 표정 또한, 자신의 존재감이 이들에게 가려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각본을 쓴 바카리즈무(마스노 히데토모)가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다. 키요미와 그 절친들, 그리고 외계인 하나가 카페에서 하릴없이 떠는 수다엔 공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단골 식당이 유명해져서 밖에 줄이 길게 서 있다면, 언제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야 할까. 어른의 지혜란 어떤 걸까. 이거 너무 늦게 깨달으면 어쩌지.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스틸컷 / 사진출처. hotspot_ntv 인스타그램
일본에서 떠오르는 예능 방송인이기도 한 바카리즈무는 특유의 입담을 드라마에 녹여낸다. 그의 전작인 <브러시 업 라이프>(2023)에서처럼, 인물의 대화는 시청자들을 간간이 미소 짓게 한다. <브러시 업 라이프>는 한 여성이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핫스팟>은 우리 곁의 이질적인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외계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우려낸 주제이기에, 하마터면 밍밍한 사골 국물이 돼버릴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이 사골 국물이 맛있게 느껴졌다면, 그 밍밍함 속에 작은 미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쳐 지나간 순간들이 막판에 결정적 퍼즐 조각이 될 때. 하찮은 내 일상에도 어떤 의미가 숨어있기를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드라마 하나로 이처럼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로 비범한 존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