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서 코가 떨어져 나가더니, 그 코가 말을 걸어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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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서정의 머나먼 나라의 책 읽기
속물성의 복수, 니콜라이 고골 <코>
속물성의 복수, 니콜라이 고골 <코>
도시마다 그 도시를 품은 이야기를 쓰고 그린 작가와 예술가를 기리는 기념비, 동상 등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지만 러시아의 북쪽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만큼 그 숫자가 많은 도시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고 할만한 건 아마도 ‘코’ 기념비가 아닐는지. 푸시킨 동상, 도스토옙스키 동상, 레핀 동상 등을 제치고 인기 투표 1위를 차지한 기념비는 바로 불멸의 ‘코’다.
림스키코르사코프 거리와 보즈네센스키 대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36/11번지 집의 벽면에는 8등관 코발료프의 가출한 코가 걸려 있다. 뛰쳐나온 코가 걸었던 길은 넵스키 대로지만, 빵 속에서 낯선 코가 처음 발견되었던 곳은 보즈네센스키 대로에 있는 이발사의 집이었다. <코>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이 1836년 푸시킨이 주관한 잡지 <동시대인>에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은 1942년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넵스키대로>와 함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로 묶였다. 코의 가출과 귀가
이야기는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어느 평범한 아침(3월 25일)에 일어나 빵 한 덩어리에서 코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독한 주정뱅이이자 대단한 냉소주의자였던 이반은 논리적인 성찰을 통해 그 코가 전날 면도한 ‘8등관’ 코발료프의 것임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헝겊으로 감싼 코를 성 이삭 다리 밑 운하에 던져 버린다.
한편, 코를 잃어버린 당사자인 8등관 코발료프는 항상 자기 외모를 흠잡을 데 없도록 관리해 온 자다. 코발료프는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고, 부유한 신부와 결혼한다는 큰 계획을 품고 있다. 평범한 아침에 잠에서 깬 코발료프는 자기 코가 없어진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은 완전히 매끄럽다. 절망 속에서 그는 코를 찾아 나선다.
어느 순간 그는 금실로 수 놓은 제복을 입고 커다란 깃을 여미고 혼자 도시를 돌아다니는 코를 만난다. 코발료프는 자기 코를 쫓기 시작하고,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코발료프는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기 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매우 우려한다. 그는 코가 없다는 것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데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코는 ‘꿈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정말로 미친 듯이 이상한데 (카프카의 <변신>보다 더 충격적인 설정인데 그보다 80년을 앞선다), 고골 자신도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를 인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이미 인간의 두뇌로써는 풀어낼 수 없는, 다시 말하자면... 아니, 아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의견도 분분했다.
극작가 예고르 로젠은 “역겨운 헛소리”, “가장 공허하고 이해할 수 없는 희극”으로 간주했고, 비평가 바실리 로자노프는 “풍자가 아니라 형식이 훌륭하고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캐리커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푸시킨은 이 이야기 속에 “예상치 못하고, 환상적이며, 재미있고, 독창적인 것이 너무 많다.”라고 했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살아남아 1928년에는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었다.
외부의 악마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방 소로친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곳이다. 민담에 바탕을 둔 우크라이나풍 극작이나 깊은 신앙심(정교 신앙과 더불어 도깨비와 악령에 대한 믿음까지)은 고향과 부모로부터의 영향이다. 1831년 선보인 <디칸카 근교 농장의 저녁>에 <소로친치 시장>, <5월의 밤 또는 익사한 여인>, <사라진 문서> 등과 함께 수록된 <이반 쿠팔라 전야>는 폴타바를 무대로 펼쳐지는 민담 기반 악마, 마녀, 귀신 이야기다.
페트로는 부유한 코사크 야코프 코르즈의 딸인 아름다운 피도르카와 사랑에 빠진다. 이반 쿠팔라(정교회력으로는 세례 요한 축일) 전날, 야코프 코르즈는 페트로와 함께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그런 가난한 남자와 자기 딸을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절망에 빠진 페트로는 선술집에 갔다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바사브류크를 만난다. 바사브류크는 페트로에게 황금을 보여주며 그의 사랑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밤에 둘은 협곡 고사리꽃 아래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피도르카의 남동생을 죽이라는 것. 그가 무서운 충동으로 이를 실행하자 보물이 그의 손에 넘어온다. 부자가 된 페트로는 결혼에 성공하나 곧 병에 걸리고, 우여곡절 끝에 고사리꽃과 연관된 마녀를 죽인 후 자신도 최후를 맞이한다.
‘그 저녁’은 아직 악마와 마녀와 귀신이 활보하고, 인간이 그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시간, 근대 이전의 세계였다. 작가는 이 유산을 짊어지고 어떤 형상화의 길로 나서게 되는가?
불결한 존재들의 행방
고골이 1832~1835년 사이 쓴 <미르고로드>에 수록된 중편 <어떻게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싸우게 되었는가>에서 ‘불결한 존재들’은 이제 인간의 내면에 들어와 있다. 미르고로드는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며, 이곳의 안녕과 안정의 상징인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라는 두 친구가 여기 살고 있다. 이반 이바노비치는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멋진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총이 갖고 싶어진다. 그는 이반 니키포로비치에게 가서 총을 갈색 돼지와 교환하자며 끈질기게 요구한다. 이반 이바노비치의 도발에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그만 그를 ‘수거위’라 부르고 만다. 이반 이바노비치는 이 모욕을 참을 수 없었고 이반 니키포로비치와 비이성적인 싸움에 돌입한다. 소동 끝에 두 사람 모두 지방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소용이 없다. 서류작업은 절차대로 이어지고 그 서류들은 보관함에 던져져 2년이 지나고 또 22년이 지나지만, 그들은 늙어가는 채로 여전히 반목하고 놀랍게도 각자에게 유리하게 해결될 것이라 믿고 있다.
법원에서 난데없이 돼지가 이반 니키포로비치의 고소장을 채가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며 작품의 사실성을 훼손하는 듯 하나, 악마가 속물성이라는 내면화된 방식으로 인간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듯 돼지 안에 들어간 ‘불결한 존재’를 희극적으로 보여주면서 환상적인 것을 삶의 진실 안에 녹여낸다.
독립한 코의 복수
<어떻게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싸우게 되었는가>의 이야기는 "여러분, 이 세상은 따분하네요!"라는 화자의 탄식으로 끝나는데, 이는 속물성의 핵심적인 부분인 경탄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고골은 속물성을 도덕적 범주에서 다루기보다 그 미학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속물성의 장엄함을 한껏 노출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중 하나인 단편 <코>는 그 형상화의 진화과정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몸 중 개인을 식별할 때 핵심적인 얼굴 중에서도 코는 중심을 차지하는 신체 기관이다. 이 ‘코’가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탈출한 ‘코’는 코 주인 보다 무려 3등급이나 높은(코 주인은 8등관이지만 ‘코’는 5등관으로 등장한다) 제복을 입고 심지어 칼을 차고 스스로를 과시한다. 관등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내적 개성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발료프는 카잔 성당에서 그의 ‘코’가 제복을 입고 열렬히 기도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려다 멈칫한다. 관료적 계층 파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귀하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계실 텐데요?" 코 주인의 말에 '코'는 등급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정확하게 방어한다. "당신은 착각하고 있소.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오. 더욱이 나와 당신 사이엔 어떤 긴밀한 관계도 있을 수 없잖소?"
20세기 초 러시아의 비평가 메레쥬콥스키는 "고골과 동시대 페테르부르크 사람인 그[코발료프]는 마치 연금술 플라스크에서 나온 듯 피터대제의 관등 표로부터 튀어나온 완전히 뿌리 없는 '유리병 속 작은 인간'이다.”라고 갈파하며, 이 사태가 "얼[혼]이 자신에 대한 실제적 부정(否定)을 두고 복수”하는 것이고 "유령의 환상적인 자기 확인으로써 복수"하는 것이라고 짚어낸다.
그의 표현대로 ‘마스크 없는 귀신’이라 명명할 수 있을 ‘독립한 코’는 속물성으로 추상화된 인격체-귀신이 다시 인간 신체 일부를 탈취하여 독립 형상으로서 이제는 인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인간은 실제로 고개를 숙인다.
코발료프의 코는 3월 25일 사라졌다가 4월 7일 아침 거짓말같이 다시 제자리에 붙어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고골이 굳이 날짜를 정확하게 표시해 둔 이유가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구력(율리우스력)과 신력(그레고리력)은 12일 차이가 난다. 즉 신력으로 통일해 계산해 보면 코발료프는 4월 6일에 코를 잃었다가 이튿날 아침 코를 찾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가 현실인지 하룻밤 꿈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코가 없는 코발료프의 추함과 그 안의 속물성이 육화된 괴물인 ‘코’의 기이함까지 더해져 부정적 희극성은 극대화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을 때 우리의 얼굴은 모두 같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평범하나 진실한 교훈도 덤으로 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
림스키코르사코프 거리와 보즈네센스키 대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36/11번지 집의 벽면에는 8등관 코발료프의 가출한 코가 걸려 있다. 뛰쳐나온 코가 걸었던 길은 넵스키 대로지만, 빵 속에서 낯선 코가 처음 발견되었던 곳은 보즈네센스키 대로에 있는 이발사의 집이었다. <코>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이 1836년 푸시킨이 주관한 잡지 <동시대인>에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은 1942년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넵스키대로>와 함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로 묶였다. 코의 가출과 귀가
이야기는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어느 평범한 아침(3월 25일)에 일어나 빵 한 덩어리에서 코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독한 주정뱅이이자 대단한 냉소주의자였던 이반은 논리적인 성찰을 통해 그 코가 전날 면도한 ‘8등관’ 코발료프의 것임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헝겊으로 감싼 코를 성 이삭 다리 밑 운하에 던져 버린다.
한편, 코를 잃어버린 당사자인 8등관 코발료프는 항상 자기 외모를 흠잡을 데 없도록 관리해 온 자다. 코발료프는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고, 부유한 신부와 결혼한다는 큰 계획을 품고 있다. 평범한 아침에 잠에서 깬 코발료프는 자기 코가 없어진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은 완전히 매끄럽다. 절망 속에서 그는 코를 찾아 나선다.
어느 순간 그는 금실로 수 놓은 제복을 입고 커다란 깃을 여미고 혼자 도시를 돌아다니는 코를 만난다. 코발료프는 자기 코를 쫓기 시작하고,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코발료프는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기 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매우 우려한다. 그는 코가 없다는 것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데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코는 ‘꿈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정말로 미친 듯이 이상한데 (카프카의 <변신>보다 더 충격적인 설정인데 그보다 80년을 앞선다), 고골 자신도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를 인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이미 인간의 두뇌로써는 풀어낼 수 없는, 다시 말하자면... 아니, 아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의견도 분분했다.
극작가 예고르 로젠은 “역겨운 헛소리”, “가장 공허하고 이해할 수 없는 희극”으로 간주했고, 비평가 바실리 로자노프는 “풍자가 아니라 형식이 훌륭하고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캐리커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푸시킨은 이 이야기 속에 “예상치 못하고, 환상적이며, 재미있고, 독창적인 것이 너무 많다.”라고 했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살아남아 1928년에는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었다.
외부의 악마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방 소로친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곳이다. 민담에 바탕을 둔 우크라이나풍 극작이나 깊은 신앙심(정교 신앙과 더불어 도깨비와 악령에 대한 믿음까지)은 고향과 부모로부터의 영향이다. 1831년 선보인 <디칸카 근교 농장의 저녁>에 <소로친치 시장>, <5월의 밤 또는 익사한 여인>, <사라진 문서> 등과 함께 수록된 <이반 쿠팔라 전야>는 폴타바를 무대로 펼쳐지는 민담 기반 악마, 마녀, 귀신 이야기다.
페트로는 부유한 코사크 야코프 코르즈의 딸인 아름다운 피도르카와 사랑에 빠진다. 이반 쿠팔라(정교회력으로는 세례 요한 축일) 전날, 야코프 코르즈는 페트로와 함께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그런 가난한 남자와 자기 딸을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절망에 빠진 페트로는 선술집에 갔다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바사브류크를 만난다. 바사브류크는 페트로에게 황금을 보여주며 그의 사랑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밤에 둘은 협곡 고사리꽃 아래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피도르카의 남동생을 죽이라는 것. 그가 무서운 충동으로 이를 실행하자 보물이 그의 손에 넘어온다. 부자가 된 페트로는 결혼에 성공하나 곧 병에 걸리고, 우여곡절 끝에 고사리꽃과 연관된 마녀를 죽인 후 자신도 최후를 맞이한다.
‘그 저녁’은 아직 악마와 마녀와 귀신이 활보하고, 인간이 그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시간, 근대 이전의 세계였다. 작가는 이 유산을 짊어지고 어떤 형상화의 길로 나서게 되는가?
불결한 존재들의 행방
고골이 1832~1835년 사이 쓴 <미르고로드>에 수록된 중편 <어떻게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싸우게 되었는가>에서 ‘불결한 존재들’은 이제 인간의 내면에 들어와 있다. 미르고로드는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며, 이곳의 안녕과 안정의 상징인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라는 두 친구가 여기 살고 있다. 이반 이바노비치는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멋진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총이 갖고 싶어진다. 그는 이반 니키포로비치에게 가서 총을 갈색 돼지와 교환하자며 끈질기게 요구한다. 이반 이바노비치의 도발에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그만 그를 ‘수거위’라 부르고 만다. 이반 이바노비치는 이 모욕을 참을 수 없었고 이반 니키포로비치와 비이성적인 싸움에 돌입한다. 소동 끝에 두 사람 모두 지방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소용이 없다. 서류작업은 절차대로 이어지고 그 서류들은 보관함에 던져져 2년이 지나고 또 22년이 지나지만, 그들은 늙어가는 채로 여전히 반목하고 놀랍게도 각자에게 유리하게 해결될 것이라 믿고 있다.
법원에서 난데없이 돼지가 이반 니키포로비치의 고소장을 채가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며 작품의 사실성을 훼손하는 듯 하나, 악마가 속물성이라는 내면화된 방식으로 인간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듯 돼지 안에 들어간 ‘불결한 존재’를 희극적으로 보여주면서 환상적인 것을 삶의 진실 안에 녹여낸다.
독립한 코의 복수
<어떻게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는 싸우게 되었는가>의 이야기는 "여러분, 이 세상은 따분하네요!"라는 화자의 탄식으로 끝나는데, 이는 속물성의 핵심적인 부분인 경탄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고골은 속물성을 도덕적 범주에서 다루기보다 그 미학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속물성의 장엄함을 한껏 노출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중 하나인 단편 <코>는 그 형상화의 진화과정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몸 중 개인을 식별할 때 핵심적인 얼굴 중에서도 코는 중심을 차지하는 신체 기관이다. 이 ‘코’가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탈출한 ‘코’는 코 주인 보다 무려 3등급이나 높은(코 주인은 8등관이지만 ‘코’는 5등관으로 등장한다) 제복을 입고 심지어 칼을 차고 스스로를 과시한다. 관등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내적 개성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발료프는 카잔 성당에서 그의 ‘코’가 제복을 입고 열렬히 기도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려다 멈칫한다. 관료적 계층 파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귀하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계실 텐데요?" 코 주인의 말에 '코'는 등급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정확하게 방어한다. "당신은 착각하고 있소.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오. 더욱이 나와 당신 사이엔 어떤 긴밀한 관계도 있을 수 없잖소?"
20세기 초 러시아의 비평가 메레쥬콥스키는 "고골과 동시대 페테르부르크 사람인 그[코발료프]는 마치 연금술 플라스크에서 나온 듯 피터대제의 관등 표로부터 튀어나온 완전히 뿌리 없는 '유리병 속 작은 인간'이다.”라고 갈파하며, 이 사태가 "얼[혼]이 자신에 대한 실제적 부정(否定)을 두고 복수”하는 것이고 "유령의 환상적인 자기 확인으로써 복수"하는 것이라고 짚어낸다.
그의 표현대로 ‘마스크 없는 귀신’이라 명명할 수 있을 ‘독립한 코’는 속물성으로 추상화된 인격체-귀신이 다시 인간 신체 일부를 탈취하여 독립 형상으로서 이제는 인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인간은 실제로 고개를 숙인다.
코발료프의 코는 3월 25일 사라졌다가 4월 7일 아침 거짓말같이 다시 제자리에 붙어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고골이 굳이 날짜를 정확하게 표시해 둔 이유가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구력(율리우스력)과 신력(그레고리력)은 12일 차이가 난다. 즉 신력으로 통일해 계산해 보면 코발료프는 4월 6일에 코를 잃었다가 이튿날 아침 코를 찾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가 현실인지 하룻밤 꿈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코가 없는 코발료프의 추함과 그 안의 속물성이 육화된 괴물인 ‘코’의 기이함까지 더해져 부정적 희극성은 극대화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을 때 우리의 얼굴은 모두 같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평범하나 진실한 교훈도 덤으로 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