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빌런의 이분법으로 10·26을 봤을 때의 허망함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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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행복의 나라>
‘역사가 기억해야 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질문이 들게 한다
후반 법정 시퀀스가 다소 지루한 이유는
역사를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진부함 때문
‘역사가 기억해야 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질문이 들게 한다
후반 법정 시퀀스가 다소 지루한 이유는
역사를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진부함 때문
꾀죄죄한 얼굴의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귤을 건넨다. 남자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귤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귤은 얼마 후 감옥에 있는 또 다른 남자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 귤은 남자가 이 세상에서 먹는 마지막 귤이자, 가족의 선물이 된다.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을 주도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심복이자 사건에 참여한 박흥주 육군 대령, 그리고 그의 변론을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는 두 남자의 연대와 우정 보다는, 대령을 변호하면서 서서히 성장해가는 소시민 변호사 ‘정인후’ (조정석, 태윤기 변호사를 극화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야기는 10월 26일,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마침내 암살이 실행되고 이들은 모두 체포되어 재판대에 선다. 몇몇 인권 변호사들은 단체를 구성하여 이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를 포섭한다. 이 가운데 ‘적당히 타협해서 적당히 먹고사는’ 변호사 정인후가 유일하게 현역 군인인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이선균, 박흥주를 극화한 인물)의 변호인으로 지목된다. 정인후는 박태주가 (군법을 적용하면) 단선제가 아닌 삼선제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분투하지만 군이 장악한 윗선에서는 이들의 모든 요구를 묵살한다. 영화는 다시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 발발 30분 전으로 돌아간다. 박태주는 정보부장으로부터 작전이 시작되면 경호원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의 행동이 쿠데타 공모의 일환인지, 위압에 의한 명령 복종인지는 법정의 쟁점이자 박태주가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된다.
<행복의 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인물과 사건의 상당 부분을 극화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추가 되는 변호인, 정인후는 젊은 청년 변호사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모인 변호사들과 달리 유명세와 (빨갱이 누명을 쓴 아버지에 대한) 울분으로 사건을 맡은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 태윤기 변호사는 광복군 출신의 인권 변호사로 그가 박홍주 사건을 맡았을 때는 61세의 노장이었다.
일단 영화의 이러한 선택에 의문이 든다. 어차피 두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변호인에 더 비중이 실리는 이야기라면 광복군 출신, 그리고 노령에 사건을 맡았던 실제 인물의 프로필이 더 영화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감독 추창민의 전작인 <광해>를 고려하면 그가 가진 소시민적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성찰과 성장을 한다는 서사가 설득력이 없지 않으나, 10·26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굳이 비슷한 인물을 다시금 만들어 소환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다시 말해 <광해>의 ‘하선’과 <행복의 나라>의 인후는 동어 반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인후가 박대령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변해가는 과정으로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귤 장면, 즉 박대령의 딸과의 만남에서 인후가 연민을 쌓는 설정은 하선이 사월과의 만남을 통해 연민, 그리고 그 연민이 백성에 대한 연민과 ‘긍휼함’으로 성장하는 설정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상당한 기시감을 주는 인물이 끌어가는 영화의 후반부는 밋밋해진다. 이야기는 변화한 주인공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는 과정으로 순차대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후반 법정 시퀀스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와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진부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나라>가 여전히 중요한 명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가 기억해야 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좋지 않은 영화가 그러하듯, 지난 역사 역시 영웅과 빌런 위주의 이분법적인 기억의 도식을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의 박대령, 그리고 그 언저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변호인단이 그러하듯 남은 세대가 기억의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이 역사의 켠켠에 산재해 있지는 않을까? <행복의 나라>는 분명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숙고를 권하는 영화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을 주도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심복이자 사건에 참여한 박흥주 육군 대령, 그리고 그의 변론을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는 두 남자의 연대와 우정 보다는, 대령을 변호하면서 서서히 성장해가는 소시민 변호사 ‘정인후’ (조정석, 태윤기 변호사를 극화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야기는 10월 26일,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마침내 암살이 실행되고 이들은 모두 체포되어 재판대에 선다. 몇몇 인권 변호사들은 단체를 구성하여 이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를 포섭한다. 이 가운데 ‘적당히 타협해서 적당히 먹고사는’ 변호사 정인후가 유일하게 현역 군인인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이선균, 박흥주를 극화한 인물)의 변호인으로 지목된다. 정인후는 박태주가 (군법을 적용하면) 단선제가 아닌 삼선제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분투하지만 군이 장악한 윗선에서는 이들의 모든 요구를 묵살한다. 영화는 다시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 발발 30분 전으로 돌아간다. 박태주는 정보부장으로부터 작전이 시작되면 경호원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의 행동이 쿠데타 공모의 일환인지, 위압에 의한 명령 복종인지는 법정의 쟁점이자 박태주가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된다.
<행복의 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인물과 사건의 상당 부분을 극화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추가 되는 변호인, 정인후는 젊은 청년 변호사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모인 변호사들과 달리 유명세와 (빨갱이 누명을 쓴 아버지에 대한) 울분으로 사건을 맡은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 태윤기 변호사는 광복군 출신의 인권 변호사로 그가 박홍주 사건을 맡았을 때는 61세의 노장이었다.
일단 영화의 이러한 선택에 의문이 든다. 어차피 두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변호인에 더 비중이 실리는 이야기라면 광복군 출신, 그리고 노령에 사건을 맡았던 실제 인물의 프로필이 더 영화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감독 추창민의 전작인 <광해>를 고려하면 그가 가진 소시민적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성찰과 성장을 한다는 서사가 설득력이 없지 않으나, 10·26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굳이 비슷한 인물을 다시금 만들어 소환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다시 말해 <광해>의 ‘하선’과 <행복의 나라>의 인후는 동어 반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인후가 박대령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변해가는 과정으로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귤 장면, 즉 박대령의 딸과의 만남에서 인후가 연민을 쌓는 설정은 하선이 사월과의 만남을 통해 연민, 그리고 그 연민이 백성에 대한 연민과 ‘긍휼함’으로 성장하는 설정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상당한 기시감을 주는 인물이 끌어가는 영화의 후반부는 밋밋해진다. 이야기는 변화한 주인공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는 과정으로 순차대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후반 법정 시퀀스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와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진부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나라>가 여전히 중요한 명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가 기억해야 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좋지 않은 영화가 그러하듯, 지난 역사 역시 영웅과 빌런 위주의 이분법적인 기억의 도식을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의 박대령, 그리고 그 언저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변호인단이 그러하듯 남은 세대가 기억의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이 역사의 켠켠에 산재해 있지는 않을까? <행복의 나라>는 분명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숙고를 권하는 영화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