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부자 순유출 규모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을 것이란 전망이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가 공개한 ‘2024년 개인자산 이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액순자산보유자 순유출은 올해 1200명으로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4위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100만달러(약 13억8000만원) 이상 유동성 투자 가능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이 타국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은 수치다. 한국의 부자 순유출은 2022년 400명에서 2023년 800명으로 두 배로 불었다. ‘부자가 떠나는 게 무슨 대수냐’며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들이 사업과 자산을 정리해 해외로 떠나면 투자와 소비, 일자리도 모두 날아간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심각성이 더욱 커진다. 1위인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동부유’를 내세우며 부자를 옭아매고 정치적 감시와 탄압을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인도는 아직 범죄와 부패가 만연하고 생활 환경이 낙후해 부자들이 떠난다. 영국은 2016년 유럽연합(EU) 탈퇴 투표 이후 자산가 이탈 추세가 본격화했다. 이런 정치·사회 문제나 경제적 격변 없이, 그것도 자유민주주의를 터전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부자 엑소더스(이탈)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고 불길한 징조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징벌적 상속세가 첫손으로 꼽힌다. 이들 다수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사실상 상속세가 없는 곳으로 옮기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부자를 백안시하는 풍토도 깔려 있다. 부의 축적에 적개심을 갖고, 반시장 정책과 징벌적 규제가 난무하는 곳에서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 이들이 살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정치와 정책 불확실성이 이들을 해외로 내모는 주요인이다. 당면한 생산성 추락과 연금·노동·저출생·고령화 등의 난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멈춰선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과 경제 구조조정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한다. 때마침 정치권에서 화두로 떠오른 상속세 개편 과제를 완수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