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을 표면에 발라 열을 가하면 색이 나타나는 종이를 ‘감열지’라고 한다. 영수증이나 택배상자 라벨 등에 주로 쓰인다. 보관 기간이 길고 정보 보존성이 높아 일반 인쇄용지보다 약 50% 비싸게 팔리는 ‘고부가가치 지종(紙種)’이다. 한솔제지의 올 1분기 영업이익(340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데는 해외에서의 감열지 인기가 한몫했다.
한철규 한솔제지 대표가 플라스틱 대체 종이 용기 테라바스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한철규 한솔제지 대표가 플라스틱 대체 종이 용기 테라바스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한철규 한솔제지 대표는 지난 14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택배 라벨 판매가 꾸준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영수증 종이 시장이 성장세여서 실적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특히 7~8년 전부터 미국 시장을 개척한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솔제지의 감열지 생산량은 연간 약 32만t으로 세계 1위다. 1986년 삼성그룹 공채를 통해 한솔제지의 전신인 전주제지에 입사한 한 대표는 40년 가까이 ‘한솔맨’으로 지냈다. 한솔개발 대표를 거쳐 2020년부터 한솔제지 대표를 맡고 있다.

감열지와 백판지(고급 포장재) 등에서 수익이 나온다고 안주할 수는 없다. 내년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솔제지는 단순 제지회사를 넘어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의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한 대표는 “본업인 종이 생산에서의 성과는 당연한 것이고 주력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지업은 특성상 화학업종으로도 볼 수 있는데 관련 분야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솔제지는 친환경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셀룰로오스 미세섬유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제품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이 소재는 나무의 구성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10억분의 1로 쪼개 나노화한 고분자 물질이다. 한 대표는 “화장품 제조 공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석유계 원료를 쓰는 제품이 있는데 친환경 물질인 셀룰로오스가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며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와 함께 개발 중이며 이르면 올 하반기 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 책상에는 자사 종이포장재(프로테고)와 종이용기(테라바스)가 놓여 있었다. 프로테고는 파우치 음료, 마스크팩 등 50여 가지 품목에 쓰인다. 폴리에틸렌(PE) 코팅을 하지 않아 생분해되는 테라바스는 밀키트 용기로도 사용된다. 한 대표는 “냉동만두 포장재 등 다양한 제품 개발을 위해 대형 식품사들과 손잡고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솔제지는 2년 전 식품포장용기 제조업체 성우엔비테크(현 한솔에코패키징)를 인수했다. 업체 추가 인수로 관련 영역을 더 개척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전 세계가 플라스틱 제로 사회로 가려고 하는데 결국 대체할 수 있는 소재는 종이밖에 없다”며 “더디더라도 관련 분야로의 확장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오가스 사업은 한솔제지의 또 다른 먹거리다. 바이오가스는 하수 찌꺼기나 분뇨, 음식쓰레기 등 유기성 폐자원이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에 분해되며 만들어지는 가스다. 내년부터 관련법 시행으로 지방자지단체에선 바이오가스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한 대표는 “지자체들이 정부 재정만으로는 다 지을 수가 없다 보니 민간과 협업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며 “바이오가스화 시설을 짓고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