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키다’ 라는 글자의 모양은 그 뜻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뒤죽박죽 뒤섞이고 복잡한 상황에 주로 사용하는 이 한글은 그 자체로 매우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새로 배우는 어린이나 외국인이 본다면 그야말로 ‘얽히고 설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얽히고 설킨 도시

세상에 얽히고 설킨 것이 참 많죠. 예를 들면, 도심을 걷거나 자전거로 수변(水邊)을 달릴 때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참 얽히고 설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 위로 수십 여 개의 차도가 씨줄과 날줄처럼 지나고 보행로와 자전거 전용 도로, 경우에 따라서는 기찻길이 놓여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일부 도시에 추진 중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Great Train eXpress)나 노면전차(路面電車, 트램)까지 어우러진다면 더욱 복잡하고 꽉 찬 장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보행로와 공중보행로, 고가차도, 지하차도가 마음껏 뒤섞여 얽히고 설킨 도시의 길은 마치 질 좋은 옷감처럼 짜여 있어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철도와 상점 보행로가 얽히고 설킨 도시 / ⓒ김현호
철도와 상점 보행로가 얽히고 설킨 도시 / ⓒ김현호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 속 미래 도시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서울이나 부산만 봐도 충분히 입체적이면서 얽히고 설켰습니다. 두 도시처럼 오랜 시간 동안 겹치고 포개어진 장소에 대해, 그것이 낡았으니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고 주장하거나 “지하화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대체로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복잡함과 우연성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학자인 리처드 세넷도 <짓기와 거주하기>를 통해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연성의 매력을 이야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뻔한 도시’는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상치 못한 우연을 발견할 수 있는 오래된 도시는 반듯한 격자형 신도시에 비해 더욱 매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얽히고 설킨 서울의 풍경 / ⓒ김현호
얽히고 설킨 서울의 풍경 / ⓒ김현호
물론 얽히고 설킨 것은 도시의 풍경만이 아닙니다.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는 ‘치도리(ちどり)’라 부르는 전통 목조 건축 기술을 활용해 구조물을 만듭니다. 수직으로 교차하는 나무 격자가 하나의 작은 단위가 되고, 그것이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만들면 새 둥지에 들어선 것처럼 푸근하고 아늑한 장소가 탄생합니다. ‘토리(とり, 鳥)’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의 ‘새’라는 뜻이니 둥지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구마 겐고의 이 구조물은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일본 열도 남부 고치현의 작은 시골 마을 유스하라초부터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에 널리 지어졌습니다. 저도 몇 해 전 교토에 지은 에이스호텔과 후쿠오카의 한 커피 가게에 잠시 들러 구마 겐고의 그 나무 격자를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직조된 구조물을 바라보며 우연히 저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과 얽히게 됐습니다.
구마 겐고의 교토 에이스호텔(위)와 구마 겐고의 구조물이 배치된 카페(아래) / ⓒ김현호
구마 겐고의 교토 에이스호텔(위)와 구마 겐고의 구조물이 배치된 카페(아래) / ⓒ김현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와 음악

얽히고 설켰다는 말이 그 어떤 영화보다 잘 어울리는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2006)>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의 사건을 절묘하게 연결해 놓았습니다.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사냥 총을 선물 받은 모로코의 양몰이 형제와 아빠, 아이를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양몰이 형제가 쏜 총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는 부부, 그 부부가 맡긴 아이들을 돌보다가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되는 멕시코 이민자 보모, 청각 장애로 차별을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딸을 둔 일본의 한 아빠(모로코로 사냥을 떠났던 그 여행자)가 얽히고 설켰습니다.

▶▶▶(관련 칼럼) = 장난으로 쏜 총에 맞았는데 여기는 모로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영화 '바벨'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바벨'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가끔씩 뒤죽박죽의 상황에 놓이면 <바벨>의 한 장면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니, 제가 아는 영화 가운데에는 가장 얽히고 설킨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심지어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사카모토 류이치의 ‘비보 노 아오 소라(美貌の青空, 아름다운 푸른 하늘)’가 흐르는데요. 보는 내내 심란했던 마음을 이 음악의 얽히고 설킨 반복적 현악기 선율이 증폭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 '바벨'의 사운드트랙 - 사카모토 류이치의 '비보 노 아노 소라']


아 그러고보니 사카모토 류이치는 청나라의 역사와 얽혔습니다. 그의 마지막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도 밝혔듯 사카모토 류이치는 청나라의 끝을 보여줬던 '마지막 황제'(1987)의 작곡가와 배우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영화이자 청나라가 시작됐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남한산성'(2017)의 음악도 맡았으니, 그야말로 ‘청나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얽히고 설킨 작곡가입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


[영화 '남한산성'의 사운드트랙]


잊을 수 없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어라이벌'(2017)에는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반복되는 선율이 배경 음악으로 사용됩니다. 바로 ‘온 더 네이처 오브 데이라이트(On the nature of daylight)’입니다. 이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최고의 사이언스픽션 작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차용해 사피어워프 가설(한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 체계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법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을 영화적 허용과 시각기술로 완성해냅니다.

사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주로 선형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과는 달리 비선형(환형) 언어를 사용하는 외계 생명체 ‘펩타포드(다리가 여섯 개도 여덟 개도 아닌 일곱 개)’에게 시제라는 개념은 필요치 않습니다. ‘시제가 없음’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지 막스 리히터의 주제곡은 조금씩 변주하면서도 처음과 끝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반복합니다.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운율처럼 얽히고 설킨 느낌의 선율을 완성한 것입니다.

[영화 '어라이벌'의 사운드트랙 - 막스 리히터의 '온 더 네이처 오브 데이라이트']

그래도 마음은 풀어야지

주말에도 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속상해하는 아이들의 얽히고 설킨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고민하던 중 자전거 타기를 떠올렸습니다. 잠수교를 지나 한남동, 옥수동, 왕십리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달렸고, 여정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 유명한 ‘한강라면’과 ‘전주식 콩나물 국밥’도 맛보았습니다. 강변도로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으로 건널 때에는 보지 못했던 얽히고 설킨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엉켰던 라면이 따뜻한 물에 풀어지듯 아이들의 마음도 한층 가벼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런 주말의 일상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얽히고 설킨 도시와 건축, 영화와 음악이 오히려 복잡했던 마음을 헤아려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깊은 밤입니다.
서을 응봉산의 등산로와 철도 자전거길 / ⓒ김현호
서을 응봉산의 등산로와 철도 자전거길 / ⓒ김현호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