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의 노래
로버트 브라우닝

한 해의 봄
하루 중 아침
아침 7시
언덕에는 진주 이슬 맺히고
종달새는 날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신은 하늘에 계시니
모든 것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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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봄날 풍경이 있다니!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의 첫 부분입니다. 짧지만 봄날 아침의 평화로운 정경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흔히 ‘봄의 노래’ ‘아침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인용되기도 하지요.

시인이 노래하는 봄은 평화로움 그 자체입니다. 언덕에는 진주처럼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종달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있고, 신은 하늘에, 인간은 땅에 있으니 세상만사 완벽한 질서와 평화를 보여줍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입니다. 피파는 1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휴가 날 아침,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노래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의 창가를 지나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남모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피파가 일하는 공장의 주인은 루카라는 노인입니다. 그의 아내는 한참 젊은 오티마인데, 가난한 독일인 세발드와 불륜 관계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세발드에게 루카가 도움을 줬지만 세발드는 오히려 루카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결국 루카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세발드와 오티마는 섣달 그믐날 밤에 루카를 죽이고 맙니다.

두 사람은 온실에 마주 앉아 있다가 피파의 노래를 듣게 되지요. 얼떨결에 살인까지 한 이들은 피파의 순정한 노래를 듣고 그 속에 담긴 어떤 힘에 이끌려 회개하며 죄를 자백하기로 결심합니다. 피파의 맑은 노래가 이들의 탁한 영혼을 구한 것이지요.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속아서 창녀의 딸과 결혼한 줄스는 아내를 버리려다가 피파의 노랫소리에서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고 희망을 갖습니다. 폭군 제거 계획을 포기하려던 루이기는 피파의 노래에서 자신의 이상과 사명을 다시 발견합니다. 속세의 악에 항복하려던 늙은 성직자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밤이 됐습니다. 피파는 자기가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한 것도 모른 채 단 하루뿐인 휴가를 헛되이 보낸 것을 슬퍼하며 고달픈 내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어느 날 거리를 지나다가 순진무구한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펜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그냥 스치는 작은 순간, 무심히 건넨 말 한마디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봄날의 마음가짐과 아침의 싱그러움, 세상의 아름다움을 낙천적으로 노래한 이 시를 오래 음미하면서 마지막 구절을 몇 번씩이나 읊조려 봅니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