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기묘하다. 전체적으로 SF 장르와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작품 속 컴퓨터는 첨단 보안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금방 뚫리며 그 흔한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는다. '9지구'에 가려면 직접 기차를 타야 하며 시험을 보려면 직접 학교에 와야 한다. 학교에서는 ‘오래된 것’ 교환 행사 같은 것도 개최한다.

인간의 계급은 역할과 거주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정도로 공고하며 서로 간의 왕래 같은 것은 것은 없다. 계급 간 결혼은 마치 이종결혼(misceganation)처럼 인식된다. 오히려 공연에는 자기반영적인 물건들, 이를테면 거울, 카세트 플레이어와 카세트 테이프, 다큐멘터리를 위한 카메라, 사진 컬렉션 그리고 인물들의 분신으로 가득하다. 근과거에서 펼쳐지는 아날로그적 SF물 같은 느낌이 공연을 지배한다. 이는 공연의 세계관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다.

16살의 그들, 완전무결한 행복을 꿈꾸다

다윈 영은 행복한 아이였다. 그는 이 세계의 주류로서 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최고 계층 1지구에 살며 유서 깊은 엘리트학교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16살 아이였다. 지배계층에 속했지만 마냥 보수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진 않았다. 법과 이상, 사회와 계층 등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그는 활발하고 명랑했으며 특히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에게 윈저 노트를 배우며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그는 단짝 친구 레오의 자유로움과 강단 있고 행동력 있는 루미를 사랑했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다윈의 아버지 니스 영 역시 행복한 16살 아이였다. 부유한 1지구 사업가의 아들로 자란 그는 벤 헐크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가수가 되기를 꿈꿨다. 그의 손에는 기타가 들려 있었고 그의 옆에는 언제나 제이와 버즈가 있었다. 그들은 학교가 끝나면 제이의 방에서 삼총사로 살았다. 니스는 순진해보일 정도로 행복한 아이였다. 제이와 버즈 사이의 갈등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을 때도 그는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니스의 아버지 러너 영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6살의 그는 꿈을 꿨다. 그는 역사의 변화를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라 믿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스스로 열정적인 리더가 되어 달렸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소년 대장’이라 호명하는 어른-대대장을 굳게 믿었다. 그에게 12월 전쟁은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혁명’이었다.

그들, 세계의 이면을 마주하다

하지만 세계는 러너에게 무자비했고 가혹했다. 그는 다름 아닌 하위 지구 사람,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상위 지구를 전복시키기 위해 어른-대대장에게 이용당한 그는 곧 죽을 운명이었다. 러너는 이 모든 허위를 깨닫고 곧바로 입고 있던 후디끈으로 그를 죽여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마치 베팅하듯 상위 지구 영(Young) 가문의 문을 두드린다.

이후의 삶은 러너에게 은폐와 망각으로 이어진다. 그는 영 가문의 아들로서 '1지구'의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으나 이마에 새겨진 별똥별 문신을 앞머리로 가리며, 12월 혁명 당시 입었던 자줏빛 후디를 지하 창고에 처박아두며, 과거를 잊는다. 그는 이렇게 악의 씨앗을 심는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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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16살 니스에게도 똑같이 가혹했다. 하지만 니스의 행동은 러너보다 더 끔찍했다. 그가 발견한 허위는 아버지가 은폐하고 있던 과거였다. 천재 친구 제이가 발견한 아버지 러너의 진짜 정체는 그에게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 세계의 주류로 계속 안락하게 사는 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는 ‘삼총사’였던 제이를 아버지의 후디끈으로 주저없이 죽인다.

이후 니스는 마치 피를 새로 갈아끼운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꾼다. 그는 노래를 중단하고 교육부 장관이 되어 1지구의 최상위 엘리트로 거듭난다. 그리고 매년 제이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완벽한 인성까지 갖춘 행정가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후디끈 자국이 붉게 남는다. 그는 <종의 기원>의 약육강식 논리로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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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절규한다. 그의 세계는 무너진다. 자신에게 완벽한 세계를 선물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허위는 다윈을 완벽하게 붕괴시킨다. 다윈의 행동은 선대보다 더 진화한다. 그는 스스로 아버지를 단죄할 수 있는 논리는 없다고 결론 짓고 니스의 비밀을 직감한 레오를 죽인다. 모든 관계와 시선에서 벗어나 가장 자유롭게 세계를 탐색했던 레오는 이렇게 단짝 친구에 의해 사라진다. 레오를 죽이는 다윈의 후디끈은 니스와 러너가 심은 죄의 씨앗이 꽃을 피워 몇 곱절로 불어난다. 붉고 붉은 피의 꽃이 마치 모든 희망을 삼겨버리는 것만 같다. 이보다 더한 아포칼립스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희망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루미가 제이 삼촌의 안경을 벗고 드디어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윈에게도 희망이 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죄의 씨앗을 먹고 자랐으나 그것이 어른의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짜 얼굴이 진짜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뮤지컬은 이렇게 (소설과 달리) 희미 어렴풋이 보이는 미래를 비전으로 담는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