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부과를 제외하고 각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무역에 개입하는 ‘비관세장벽’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표준, 위생·검역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거나 ‘안보’를 이유로 들며 상품과 원자재 수출입을 통제하는 사례 등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역 통제 주체가 상대국 정부인 만큼 비관세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 역량을 한층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증하는 비관세장벽

작년 비관세장벽 역대 최대…韓 수출 발목잡나
8일 한국경제신문이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무역정책검토기구의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세계 신규 비관세장벽은 약 6360개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6293개를 넘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자유무역 흐름이 한창이던 2005년(1953개)에 비해 20년도 안 돼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무역장벽은 크게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으로 나뉜다. 비관세장벽은 수출입을 제한하는 쿼터 및 허가제, 무역기술장벽(TBT), 농축산물에 주로 적용하는 위생·검역조치(SPS) 등이 포함된다.

비관세장벽이 급증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선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눈에 잘 띄어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지기 쉬운 관세장벽은 2016년 343개에서 2023년 145개로 감소하는 동안 상대국이 판정하기 힘들고 무역 통제 효과도 큰 비관세장벽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비관세장벽 증가세는 특히 무역기술장벽과 위생·검역조치가 주도하고 있다. 2016년 2332개이던 무역기술장벽은 2023년 4079개로 크게 늘었다. 위생·검역조치도 같은 기간 1392개에서 2088개로 증가했다. 식량과 화석연료, 핵심 광물 등의 수출 통제를 포함한 기타 조치 역시 138개에서 193개로 늘었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장벽’도 난무

여기에 통관 지연 등 WTO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그림자’ 비관세장벽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치는 더 클 수 있다는 것이 무역당국의 설명이다.

비관세장벽의 최근 흐름은 원자재를 수입해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 등 중간재와 완제품을 파는 한국에 더욱 불리한 상황이다. 2016년 20건이던 세계 수출제한 조치는 2022년 146건, 2023년 99건으로 늘었다. 수출제한 품목은 화석연료 및 석유(44.1%), 곡물(11.4%) 등으로 한국의 주요 수입 품목이었다. 반면 수입 제한 품목은 기계류(17.3%), 자동차 및 부품(15.3%), 철강(9.9%) 등으로 한국의 주요 수출 상품이었다.

각국이 자국 생산 기반 확대에 나서면서 세계 수입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54%에서 2023년 49.5%로 떨어졌다. 주요 수출국이 4개 이하로 공급망 문제에 취약한 병목(bottleneck) 생산품도 2000년 778개에서 2021년 1075개로 증가했다.

비관세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 역량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역 통제의 주체가 상대국 정부인 만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정부가 주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