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구청·건강보험공단 "관리 대상 아니었다"
50대 아들, 치매 앓은 80대 부친 살해하고 극단 선택 추정
17일 대구에서 발생한 8년간 치매를 앓던 80대 노인과 간병하던 아들이 모두 숨지는 사건의 이면에는 국가의 복지 공백이 자리 잡고 있다.

치매 당사자나 가족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하지 않으면 사실상 국가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채 간병 과정을 참아내야 해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구 달서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달서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80대 A씨가 50대 아들 B씨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로 발견됐다.

아들 B씨는 아파트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아들 B씨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8년간 치매를 앓아왔으며 아들 B씨는 그런 아버지를 간병해왔다.

아들 B씨는 A씨에 대한 국가의 별다른 지원 없이 간병 기간을 감내했다.

A씨는 장기요양서비스 제공 대상자가 아니었다.

건강보험공단은 '당사자'나 '가족', '대리인'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하면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해 등급을 부여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인지 지원 등급을 받더라도 주야간 보호센터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A씨는 이러한 지원을 받지 않았다.

A씨가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할 달서구의 복지 서비스 제공도 없었다.

달서구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우리 지역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되신 분은 아닌 걸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 복지 담당 공무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면 현재로서는 행정 기관이 먼저 나서서 도움이 필요한 치매 환자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는 현수막이나 지역 통장 회의 등을 통해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안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허만세 계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좀 더 (지원이 필요한 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당국이 선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공 돌봄 체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 같은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사회 복지 서비스가 더 확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