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사진=REUTERS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민간 상선을 공격하며 세계 주요 교역로가 위협을 받는 가운데 이란이 11일(현지시간) 걸프 해역(페르시아만)과 이어진 오만만에서 미국 기업의 유조선을 나포했다. 에너지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항행 위기가 동시에 발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현지 매체 타스님 통신은 "이란 해군이 오늘 오전 오만만 해역에서 미국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 호'를 나포했다"며 "법원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타스님뉴스는 "해당 유조선이 올해 이란의 석유를 훔쳐 미국에 제공했다"고 전했다.

걸프 해역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해상 진출로다. 전 세계 천연가스(LNG)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이 경로를 지나간다.

앞서 이날 영국 해사 무역기구(UKMTO)도 오만만 인근에서 군복 차림의 남성들이 유조선에 무단 승선하는 일이 있었다고 경고한 바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UKMTO는 이날 상황이 이른 아침 오만과 이란 사이의 해역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UKMTO는 선장과 통화 중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으며, 이후 재차 통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해사 보안 업체 앰브레이는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 호에 6명의 군복차림 남성이 승선했고 이들은 곧바로 감시 카메라를 가렸다"며 선박자동식별장치(AIS)도 꺼졌다고 전했다.

이 선박은 튀르키예 정유업체 알리아가로 운송할 석유를 싣기 위해 이라크 바스라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었고, 이후 방향을 바꿔 이란의 반다르 에-자스크로 향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운용하는 그리스 선사인 엠파이어 내비게이션은 이 배에 그리스인 1명과 필리핀인 18명 등 모두 19명이 승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셜 제도 선적의 이 배는 지난해 제재 대상인 이란산 석유 밀수에 연루된 적도 있다.
당시 선명(船名)이 '수에즈 라잔'이었던 이 선박은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 98만 배럴을 싣고 있다가 미 당국에 적발됐다.

엠파이어 내비게이션은 지난해 9월 혐의를 인정하고 24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벌어진 뒤 예멘 반군은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30차례 가까이 공격·위협했다. 세계 주요 해운사가 '홍해-수에즈 운하-지중해' 항로를 기피하면서 그 여파로 해상 운송이 타격받고 있다.

이란은 부인하지만, 예멘 반군이 사실상 이란의 지시를 받거나 공조하면서 홍해 위 군사 행동을 감행하는 만큼 이란이 글로벌 교역의 통로인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동시에 과시한 셈이다. 이란이 가자지구 전쟁을 비롯해 헤즈볼라 지휘관 폭사, 시리아 친이란 시설 폭격 등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경고한 만큼 이번 나포가 '보복'의 신호일 수도 있다는 평가다.

오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