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사전 브리핑. 새해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의 설명이 끝난 후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정작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되지 않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관련 내용이었다.

이유가 뭘까.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사전브리핑에 앞서 한 시간가량 전에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축사에서 “내년에 도입 예정인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취임 후 처음이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모든 투자자에게 22~27.5% 세율로 매기는 세금이다. 여야는 2022년 금투세 시행 시기를 2025년까지 2년간 유예하면서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뒤집는 ‘깜짝 선언’을 한 것이다.

문제는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역점 경제정책이 포함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엔 금투세 폐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상 경제정책방향엔 조세특례제한법을 비롯해 각종 핵심 세제 개편안도 담긴다. 실제로 2022년 6월 현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도 금투세 도입을 2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투세 폐지와 같은 굵직한 정책이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되지 않은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기재부 안팎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전격 발표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해야 할 기재부가 사실상 배제된 이른바 ‘기재부 패싱’이 이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신임 후보자로 발표된 지난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 왔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도 금투세 폐지 관련해선 기재부 세제실에서 일절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차관은 금투세 폐지 관련 대통령실과 사전 합의가 있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과 기재부가 사전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 협의했는지를 묻는 추가 질문에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행보나 메시지와 관련된 정책은 특수성을 감안해서 다룰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또 다른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실과 협의한 건 사실이지만 관련 회의가 열린 시점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재부 패싱’ 논란은 지난달 말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상향하는 과정에서도 빚어졌다.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12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양도세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추 전 부총리는 평소에도 양도세 완화는 여야 합의 사안이기 때문에 연내 완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속해서 강조해 왔다.

하지만 불과 열흘 후인 지난달 21일 기재부는 대주주의 종목당 보유액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발언도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하게 달라졌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중순 제출한 인사청문회 질의 답변서에선 “양도세 완화는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열린 인사 청문회에선 “대내외 경제여건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사실상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여당이 최 부총리와 추 전 부총리 반대에도 개미 투자자들을 의식해 양도세 완화를 밀어붙였다는 관측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