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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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산업 ‘더미식 장인라면’(이마트 기준 4개들이 한 봉지 7800원), 농심 ‘신라면 블랙’(4개 6150원), 오뚜기 ‘진짬뽕’(4개 6180원)은 농심 ‘신라면’, 오뚜기 ‘진라면’ 등 대중적 라면에 비해 비싼 프리미엄 라면이다. 이마트에서 세 가지를 모두 정상가에 사면 2만130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뜻 카트에 담기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가격대다.

그런데 이마트가 최근 소비자들의 라면 구매 습관을 바꾸기 위한 파격적인 마케팅을 잇달아 선보여 관심을 끈다. 지난달 2~3일에 이어 31일~올해 1월 1일에도 어떤 브랜드든 상관없이 9900원에 소비자 마음대로 3봉지(4~5개들이 기준)를 고를 수 있는 행사를 했다. 더미식 장인라면, 신라면 블랙, 진짬뽕을 한꺼번에 사도 9900원을 적용해 할인율은 50.8%에 달한다. 상품 구성, 할인율 등에 대한 결정권을 소비자에게 돌려준 셈이다.
세 팩에 9900원…이마트의 '라면 실험'

2+1 행사 공식 깼더니

결과는 지난달 2~3일 행사에서 이마트 전체 매장의 라면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1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5000원 이상 고가 라면 매출 비중은 평소 5%에서 35% 수준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마트의 이번 마케팅은 기존의 라면 행사 공식을 깬 것이어서 경쟁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통상 대형마트 라면 행사는 ‘2+1’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정 브랜드를 2개 이상 사면 하나를 공짜로 주는 마케팅이다.

이마트가 1993년 서울 창동에 국내 최초 대형마트인 창동점을 연 이후 30년간 지속된 기법이다. 2+1 마케팅은 할인 대상과 방식 모두 공급자인 마트가 결정한다.

이런 마케팅의 최대 수혜자는 신라면, 진라면 등 스테디셀러들이다. 대형마트·식품사가 별다른 고민 없이 이들을 행사 품목으로 선정해 이벤트 기간은 물론 그 이후에도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가 이들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트의 이번 행사는 다양한 브랜드의 판매가 촉진돼 ‘대세 라면’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행사가 끝난 이후 지난달 4~12일에도 평소 잘 안 팔리던 브랜드들의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 상위 5개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 매출 비중이 60%로, 행사 전(53%)에 비해 늘었다. 라면 제조사의 팔을 비틀지 않고 소비자 선택으로 끌어낸 결과다. 박은혜 이마트 라면 바이어는 “다양한 브랜드 제품이 팔리면 이마트의 라면 실적 전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 경쟁력 강화 드라이브

이마트는 지난해 9월 한채양 대표 취임 후 상품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쿠팡 등 e커머스에 빼앗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한 대표는 상품 본부에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마음껏 일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본원 경쟁력 회복’을 내걸고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의 관련 부서를 통합한 상품 조달 조직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마트는 쇼핑 트렌드를 이끌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초 해외 기업과의 협업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납품사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이마트의 최대 경쟁력”이라며 “국내외 주요 기업과 손잡고 이마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품을 계속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납품단가 인하 압박 같은 방식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이마트 측 설명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