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아르헨의 달러라이제이션
하비에르 밀레이는 지난달 1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한 연설에서 미국 달러화를 자국 통화로 도입하겠다는 구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페소를 버리고 미국 달러를 쓰겠다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그의 핵심 공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대목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미 달러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밀레이가 완전히 파기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하지만 정황상 밀레이가 달러라이제이션을 바로 시작할 용기는 없어 보인다.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수십 년 동안 포퓰리즘을 지탱하기 위해 세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해 왔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중앙은행에 페소화를 찍어내라고 압박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정치인의 탐욕 앞에서 무력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격과 자본을 통제했다.

달러 도입의 선결 과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웃 우루과이에 자산을 예치하거나 집에 달러를 은닉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외환 통제를 중단한다면, 국민이 보유한 2300억달러(약 298조원)가량의 미국 달러가 시중에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다. 외국인들도 아르헨티나에 투자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게 바로 밀레이가 달러라이제이션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다. 이제 관건은 실행 시점과 순서다. 달러라이제이션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에 법적 계약, 은행 예금, 정부와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미국 달러로 전환해야 한다. 그에 앞서 일정 기간 자본 통제를 해제해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실제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시중에 도는 페소가 점진적으로 미국 달러로 바뀌고, 달러라이제이션이 국가 신뢰도를 높여 외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불확실성이 만만치 않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순외환보유액은 마이너스(-)라 기업이 무역에 필요로 하는 달러를 내줄 능력이 없다. 정부는 파산 상태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고 경제 개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통화 발행 통제와 경화 필요

밀레이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전임 정부로부터 물려받게 됐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350페소 수준이지만, 암시장 환율은 그의 3배 정도다. 오랜 통제 정책 때문에 아르헨티나 페소의 진짜 가치를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도 문제다. 밀레이에게 대형 폭탄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아르헨티나는 고통스러운 변화에 직면했다. 그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도 지키는 게 밀레이에게는 최선이다. 점진적으로 통화를 평가절하해 고정환율제를 끝내고, 자본 통제를 해제한다면 여파가 덜할 것이다. 다만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일단은 무분별한 통화 발행이 불가능하게끔 통제하는 게 아르헨티나에 최우선 과제다. 아르헨티나에는 경화(hard currency: 환 관리를 받지 않고 금 또는 외환과 늘 교환할 수 있는 화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Argentina’s Big Dollarization Risk’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