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디지털 원, 암호자산 거래 부추길까 우려"…BIS총장 "현금도 써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디지털 원 개발이 암호자산 거래를 부추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에서 열린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와 미래 통화시스템' 주제 세미나에서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과 대담하면서다.

한은의 기관용 CBDC 파일럿 테스트인 '디지털 원' 추진이 암호자산 시장을 확대하는 것으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이 총재는 또 바이낸스 사태 등 '자금세탁' 모니터링 문제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중앙은행이 개인의 정보를 들여다본 사례가 없었다"며 "기술이 더 발전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멕시코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IMFC 의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 사무총장에는지난 2017년 취임했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CBDC가 개발되더라도 현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고 보완적으로 사용될 것이란 전망이다.

개인 입장의 변화도 아주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토큰화된 예금에 기반한 통화시스템은 현재와 비슷하다"며 "개인 사용자 경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금계좌를 이용해 거래를 하는 방식은 기존과 같을 것이란 의미다.

다만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거래 지연이 발생하지 않고, 추가비용 없이 주식이나 기타 금융자산까지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많은 기능을 가진 은행계좌가 생기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금융시스템의 '퀀텀 점프'가 필요하다"며 CBDC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프로그래밍 기능을 활용해 스마트계약과 복수의 거래를 조건부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기존 금융시스템의 비효율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CBDC 실거래 실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은의 CBDC 프로젝트인 '디지털 원'은 미래 통화 시스템의 비전과 잘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은 CBDC 네트워크 중심에 기관용 CBDC가 있고, 규제를 적용받는 은행시스템이 토큰화한 예금을 통해 공통 원장에 참여한다"며 "(디지털 원화) 프로젝트 설계 구조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화폐 원장과 상호 작용하는 연계 플랫폼이 (구조에) 포함돼 플랫폼이 시장 발달에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