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여중고 최고령 수능응시생 김정자 할머니…우연한 기회 '못배운 한' 풀어
"용기 내서 두드려라"…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한자 급수 따고 알파벳도 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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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간 남편이 편지를 보내도 글을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었지. 남편도 옆에 없는 미운 며느리였으니 얼마나 시집살이가 고됐겠어."
만학도 김정자(82) 할머니는 배움이 짧아 서러웠던 시절을 돌아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도 못 써 아쉬웠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른 듯 할머니는 수줍어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김 할머니는 학업을 제때 마치지 못한 40∼80대 만학도들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 3학년 1반 학생이다.

오는 16일 열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학교 최고령 응시생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막바지 수능 공부에 한창인 김 할머니를 서울 마포구 일성여중·고 교실에서 만났다.

1941년생인 김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 지금의 경남 마산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면 단위의 작은 시골 마을인 데다 세상이 혼란스러워 출생 신고도 제때 하지 못해 호적은 1943년생으로 올라갔다.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갈 즈음엔 한국전쟁이 터져 거제도로 피란을 갔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살던 집도 불타버리고 없었다"며 "사는 것이 힘든 시기에 더군다나 8남매의 맏딸이니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만 잘하면 된다던 아버지는 김 할머니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에 마을 부농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학업에 뜻이 있었던 남편은 농사일을 우선시했던 형과 뜻이 맞지 않아 상경했고 김 할머니는 홀로 엄한 시집살이 3년을 보내고서야 남편을 따라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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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도 없이 아궁이 하나 있는 작은 방이었지만 자상하고 사려 깊은 남편 덕에 서울살이에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한 딸의 해외 유학길을 배웅하면서는 몹시 슬펐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공항에 갔는데 딸이 나갈 출입구도 못 찾았다"며 "내가 무식해서 이렇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엄청 미웠다"고 말했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지 못한 채 나이를 먹던 2017년에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들렀다 오는 길에 우연히 전철에서 주부들의 학교를 홍보하는 부채를 주운 것이다.

전화해보니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했다.

"부채를 들고 무작정 학교를 찾아가니까 생전 처음으로 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어. 그래도 들어갈 용기가 안 나 학교 문 앞을 4번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용기를 냈어. 교실 문을 살짝 열어보니까 공부하는 아줌마들이 꽉 차 있어서 깜짝 놀랐지."
당장이라도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입학 신청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있었다.

이듬해 입학하기로 약속하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국어책과 간단한 산수 문제들이 담긴 학습지를 받아 집에서 홀로 공부를 시작했다.

구구단은 노래하듯이 외웠고 글자는 조각하듯이 마음에 새겼다.

공부는 어려웠지만 흥겨웠다.

남편은 젊었을 때 못 배웠으니 원 없이 공부하라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그러나 공부를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김 할머니는 "영감은 '내가 가르쳐주면 자꾸 나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절대로 안 공부를 가르쳐줬다"며 "특별한 비법도 없이 그날그날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복습하고 자꾸 책을 보고 읽어보면서 공부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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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잡은 펜에 같은 반 학생들 보기 민망스러워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한 글자씩 깨치는 즐거움을 놓지는 못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년 차에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7급을 땄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약 6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지각과 결석, 조퇴 한번 없이 수업을 들었다.

이젠 그토록 배우고 싶던 한글도 깨쳤고 알파벳도 다 외웠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숙명여대 미래교육원에 등록할 예정이다.

"어느 학교에 가든지 영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미국에 있는 우리 손주들이랑 영어로 통화를 하고 싶은 게 내 꿈이야."
마지막으로 다른 만학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김 할머니는 "몰라서 못 오는 분들도 있고 용기를 못 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많이들 와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