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젠틀몬스터 매장을 둘러보는 현지 고객들의 모습.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의 젠틀몬스터 매장을 둘러보는 현지 고객들의 모습. 양지윤 기자
중국이 급속한 경기냉각을 막기 위해 하반기 들어 잇달아 발표한 부양책이 조금씩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최근 발표됐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9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기대비 5.5%로, 발표 전 블룸버그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웃돌았다.

이런 흐름은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 소비 현장에서도 감지됐다. 지난달 18일 오전 10시30분께 찾은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미국 회원제 대형마트 ‘샘스클럽’ 전루(真如)점. 이곳은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쇼핑카트를 끌고 물건을 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카트마다 美 소고기 가득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샘스클럽에서 현지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고객들이 꽤 많다.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샘스클럽에서 현지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고객들이 꽤 많다. 양지윤 기자
연면적 5만㎡ 규모인 이 마트는 이 일대에서 작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주말 기준으로 하루에 5000~7000명이 쏟아져들어와 쇼핑을 한다. 평균 객단가(1인당 구입액)는 1000위안(약 18만원) 수준이다.

중국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국면에 접어든 이후 상하이 소비 현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트렌드로는 ‘가치소비’의 확산이 거론된다. ‘궈차오(애국소비)’ 흐름이 약화하고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품목이라면, 미국 캐나다 등 외교적으로 충돌하는 국가의 브랜드라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회원제 마트 '샘스클럽'에서 소비자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구매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회원제 마트 '샘스클럽'에서 소비자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구매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실제로 샘스클럽 전루점에서 마주친 쇼핑객들도 미국·호주산 소고기, 벨기에 초콜릿, 일본 라면, 한국 과자 등 수입 제품들을 거침 없이 쇼핑카트에 담고 있었다. 샘스클럽이 미국 마트인 만큼 판매하는 전체 공산품의 80%는 해외 제품이다.

지난달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포천 글로벌500 서밋’에 락스만 나라심한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도 “중국에서 스타벅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9시간마다 새로운 매장을 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 7000여개인 중국 내 스타벅스 매장은 2025년께 1만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캐나다 애슬레저 브랜드 ‘룰루레몬’의 2분기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61% 급증했고, 한국의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중국 내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15개 도시 20개 점포를 출점했다.

○'상하이의 명동'도 인파로 북적

상하이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난징동루 거리가 평일에도 사람으로 붐빈다. 양지윤 기자
상하이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난징동루 거리가 평일에도 사람으로 붐빈다. 양지윤 기자
서울의 명동에 비견되는 ‘난징동루’는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를 대표하는 상권 중 하나다. 현지 유통업계에는 “중국 경기가 어떤지 궁금하면 난징동루의 인파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난징동루는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난징동루 메인 거리의 아동복 전문 쇼핑몰 1층에 위치한 ‘뉴발란스 키즈’ 매장. 이곳에선 제품 박스들을 쌓아두고 자녀 옷 쇼핑에 한창인 부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매장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를 좋아하는 젊은 부모들이 모자·아우터·신발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밀 제품들을 한꺼번에 구매해가는 경우가 많다”며 “주말에는 사람이 몰려 발디딜 틈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높아진 눈높이

중국 상하이 신천지의 발렌티노 매장 앞에 현지 고객들이 줄을 서있다.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 신천지의 발렌티노 매장 앞에 현지 고객들이 줄을 서있다. 양지윤 기자

이런 현상은 상하이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류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1%로, 1%대인 미국·일본보다 높다.

중국 국민들의 의류 지출은 2027년까지 연평균 3~4% 증가할 전망이다. 이 역시 미국(2~3%), 일본(-1~0%)을 앞선다. BCG는 “지속적인 소득 증가와 새로운 세대의 부상으로 패션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며 “패션산업 규모가 소득 증가에 따라 꾸준히 커져 ‘양은질승(量稳質升·양은 안정되고 질은 개선된다)’ 추세를 보일 것”이라 전망했다.

중국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접어든 후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높은 소비여력으로 무장한 신중산층이다.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이 16만위안(약 3000만원)을 넘는 도시지역 중상~상위 소득 가구의 비중은 지난해 41%로, 2015년의 12%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 비중은 2025년에 52%까지 확대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상하이의 한 쇼핑몰의 나이키 매장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의 한 쇼핑몰의 나이키 매장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이들이 소비를 할 때 고려하는 최우선 순위는 생산국이 아닌, 품질이다.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소비재 기업 관계자들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확연히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e커머스의 활성화로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게 이들의 설명이다. 중국 패션업계 관계자는 “궈차오(애국소비)도 있지만, 신중산층에 가장 중요한 건 품질과 브랜드파워”라며 “최근 중국과 껄끄러운 캐나다의 ‘룰루레몬’, 한국의 ‘젠틀몬스터’가 불티나게 팔리는 게 그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식료품도 깐깐하게 소비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허마셴셩 매장 입구.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허마셴셩 매장 입구. 양지윤 기자
식료품 시장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냉장고기와 해산물, 채소 등 신선 식자재에 대한 수요가 팽창하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신선 식료품 시장 규모는 1조7400억달러(약 2363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5%씩 성장해 2027년엔 2조1200억달러(약 2880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는 빠른 디지털화로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채널 융합) 환경을 구현해 낸 현지 유통기업의 성장과 맞물려 가속 중이다. 알리바바그룹의 신선식품 슈퍼마켓 허마셴셩(盒馬鮮生)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허마셴셩 매장에 한국 라면이 전시돼있다. 양지윤 기자
중국 상하이 푸퉈구의 허마셴셩 매장에 한국 라면이 전시돼있다. 양지윤 기자
2015년 설립된 허마셴셩은 2016년 상해에 첫 매장을 낸 이후 7년 만에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매장을 350여개로 확대했다.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하면 30분 내 배송을 해주는 ‘3㎞ 내 30분 배송’ 서비스를 앞세워 사세를 불렸다. 생산자로부터 직거래로 농수축산물을 조달해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개선한 게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공식품의 경우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해외 제품들의 인기가 높다. 이날 방문한 상하이 푸퉈구의 허마셴셩 매장에서는 오뚜기 카레를 비롯해 종가 김치, 농심 바나나킥·포카칩과 노브랜드 인절미스낵 등 다양한 한국산 가공식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허마셴셩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공간이 제한돼 온라인에서 주문량이 많은 제품들을 위주로 매대를 채우는데, 해외 브랜드가 많다”며 “한국 제품의 경우 불닭볶음면(삼양식품)이나 김치라면(농심), 남양·연세유업의 우유 등이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상하이=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