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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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한 시계 제조 강국인 스위스가 최근 총선 개표에서는 중대한 실수를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다른 정확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스위스의 굴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위스 연방통계청은 26일(현지시간) 베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2일 실시된 총선 이후 득표율 집계 과정에 컴퓨터 오류로 인해 각 정당별 득표율이 과다 혹은 과소 계상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개표 오류는 변명할 수조차 없는 실수"라며 "이번 사안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총선 당일 발표된 개표 결과에 따르면 우익 성향의 제1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의 득표율이 뚜렷하게 강세를 보인 반면, 직전 총선에서 약진했던 녹색 계열 정당들의 득표율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국민당의 득표율은 2019년 총선 대비 3%포인트 가까이 약진해 28.6%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고 녹색당 및 녹색자유당의 득표율은 동기간 5%포인트 떨어진 16.6%에 머무른 것으로 조사됐다.

4년 전 총선에서는 폭염을 비롯한 이상 기후가 스위스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정책 노선으로 삼은 녹색 정당들이 약진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환경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이와 반대로 불법 이민자 증가 현상에 따른 사회 불안, 건강보험 비용의 상승 등을 놓고 적극적인 정책 도입을 강조해온 우익 성향 정당들로 표심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날 연방통계청은 스위스국민당과 녹색·녹색자유당의 득표율을 각각 27.9%, 17.4%로 조정했다. 개표 시스템에 설정된 가중치 오류로 인해 스위스의 총 26개 주 가운데 3개 주의 득표수가 3~5배로 처리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된 선거 결과가 의회 의석수 배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다만 오는 12월 연방의회에서 선출되는 각료 7인으로 구성되는 연방평의회(행정부 격) 구성 협상에는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대표 일간지 취리히차이퉁은 "이번 선거는 실패적"이라며 "스위스가 (개표 오류라는) 당혹감에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