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이전, 잇단 화재…'120년 노포' 이문설농탕 수난사
19일 찾은 서울 견지동 이문설농탕. 국내 최고(最古)의 식당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날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입구엔 ‘화재로 인하여 당분간 영업을 쉽니다’는 알림이 붙어 있었다. 가게를 찾아온 인근 직장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지난 16일 이문설농탕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손님과 직원 45명이 긴급 대피해 인명 피해는 막았지만 주방 천장 약 30㎡가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감식을 통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 열기가 주방 환풍구로 빠져나가던 중 통로에 묻어 있던 기름때에서 발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식당은 화재 재발을 막기 위해 당분간 내부 수리에 들어갔다.

이문설농탕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1904년 처음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902년이나 1907년에 개업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영업허가증을 받은 식당이다.

긴 역사만큼 굴곡도 많았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금과 달랐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앞 지금의 서울YMCA 건물 뒤편이 이문설농탕의 첫 보금자리였다. 근처에 있던 ‘이문고개’에서 이름을 따와 ‘이문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식당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도심화와 재개발의 영향을 비껴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엔 조선인이 세운 백화점으로 유명한 화신백화점 뒤편(지금의 서울 공평동)에 자리 잡았다가 2011년 이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사왔다.

열기를 사용하는 만큼 화재 사건도 빈번했다. 이문설농탕은 지난해에도 추석연휴가 끝난 직후에 가게에 불이 났다. 전혜령 사장은 “목조 건물이다 보니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고 말했다.

가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과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단골집이었다거나 주먹으로 종로를 평정했던 김두한이 어린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전 사장은 남편에 이어 지난해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의 집안이 이문설농탕 주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 사장의 시어머니가 1960년대 ‘홍씨’로 알려진 인물로부터 가게를 인수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시어머니는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자전문대를 졸업한 수재였다.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지만 월급으로 시부모와 남편, 자녀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어 명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학교 동문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전 사장에게 비법을 전해준 이화여전 동문은 고(故) 이원숙 씨로, 지휘자 정명훈(70)의 어머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