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작가 '나는 너늘,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 '나는 너늘, 너는 나를'
지난 23일 오후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 화강암 덩어리로 쌓아올린 육중한 돌탑들이 천정에 닿을듯 줄지어 서있다. 파도가 깎고 바닷바람이 쓸어간 흔적들이 마치 수천 년간 바다에 존재했을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대체 이 돌들은 누가 어떻게 옮겨와 쌓아둔 걸까' 궁금해하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그거 돌 아니에요, 이 근처 바닷가에서 모아온 스티로폼입니다."
최정화 작가 '나는 너늘,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 '나는 너늘, 너는 나를'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 최정화(52), 30년 넘게 버려진 플리스틱과 스티로폼, 찌그러진 양철 그릇과 농기구를 국내외에서 수집해온 그가 지난 여름 20대 대학생들과 '해양 쓰레기 수집'에 나섰다. 스스로 '넝마주이'라 부르는 그는 제 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하며 조선대·전남대·목포대 미술 전공 학생들 26명을 모았다. 3개월 넘게 학생들과 그야말로 고행을 했다.

"여름 내내 전남의 서쪽 남쪽 해안을 샅샅이 훑었어요. '여기 있는 쓰레기를 다 치우자'는 마음으로 모은 뒤 작품에 쓰일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씻고 닦았죠. 다른 작업은 하지 않았고요."

그렇게 모은 대형 스티로폼 조각들은 바닷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모양도, 그 안에 새겨진 문양도 제각각이다. 최 작가에겐 플라스틱과 콘크리트도 제 2의 자연이다. 플라스틱도 결국 자연의 자료로 '자연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료이기 때문이다. 코끼리 상아를 보호하기 위해 당구공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게 됐고, 거북이 등껍질을 덜 쓰기 위해 안경과 머리빗을 플라스틱 합성 재료로 만들게 됐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예술의 근원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예를 들어 시장에서 쓰는 바구니, 빨래판, 양철 냄비, 리어카와 플라스틱 의자) 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누군가 잘 쓰다 버려진 바다 위의 쓰레기들에 눈을 돌렸다. 대학생들과 작업할 때도 '쓰레기 수거'라는 말 대신 '보물 채집'이라는 언어를 썼다.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이번 전시의 부제는 '홀로바이온트(Holobiont)'다. '온생명체' '통생명체'와 같은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커다란 생태계 전체를 일컫는 생물학 용어인데 그는 이를 '김치'에 빗댔다. 그걸 압축한 말이자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너를, 너는 나를'이 탄생했다. 그의 이전 작업 중 커다랗게 부풀었다 줄어드는 배추와 무 등의 작업들도 전시장에 함께 배치됐다.

"배추 스스로는 김치가 될 수 없죠. 그 안에 들어있는 무수한 양념과 재료들, 시간과 공기까지 상호작용하면서 결국 김치가 되니까요."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제 2전시장에 들어선 거대한 부표 설치물들이다. 고기잡이 배들을 안내했을 노란색 부표들, 양식장이나 경계선에 쓰였을 주황색 부표들, 알 수 없는 검고 파란 플라스틱 부표들이 엮여 천정에서 늘어진 모습이 거대한 샹들리에를 보는 듯했다. 그가 해양 쓰레기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부표, 남해의 해양쓰레기로 만든 성게 조형, 일본 가고시마에서도 유사한 과정의 작업을 해왔다.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이러한 그의 작업을 보며 요즘 유행하는 '환경운동가'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 그는 "나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싫어한다"면서 "그저 환경과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람, 다르게 보도록 이끄는 사람이다"고 했다.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최정화 작가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그런 그의 작품세계는 세계 각국에서 프로젝트로 펼쳐진다. 일본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메쉬'는 그와 함께 '가방 탑'을 3년간 쌓았고, 네스프레소는 버려진 커피 캡슐로 그에게 거대한 꽃을 피우는 작업을 의뢰하기도 했다. 일본 가고시마 온천 지역의 폐타이어는 물론 벨기에에서 잔뜩 버려진 강아지집들도 그에겐 작품의 재료가 됐다.

최정화의 예술은 '올바른 편견'과 '객관적 실천'으로 압축된다. 그가 대한민국의 '아줌마'들, 시장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운 예술관이다. 이날 전시 오프닝에 이어진 컨퍼런스에 참석한 학생들은 "생각을 깨는 시간이었다. 그 동안 배웠던 것들에 대한 자기 반성의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남쪽으로 향했던 걸까.

"과연 자연이 보호해야 할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 아닐까요. 너와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결국 그 중심은 흐른다는 것을요. 얽히고 설킨 우주에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조금 벗어던지고 자연스럽게 울리고 흔들리는 그 중심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광주=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