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주식 샀더니 밀물처럼 돈 '콸콸'…어떤 펀드길래
액티브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게 최근 자본시장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 달리 돈을 빨아들이는 액티브펀드가 있다. VIP자산운용의 사실상 첫 공모펀드인 '한국형가치투자 펀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월 출시된 이 펀드에는 지금까지 1643억원(지난 26일 기준)이 들어왔다. 최근 3개월간 유입액은 740억원으로,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액티브펀드에서 2130억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비된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공동대표(사진)는 27일 기자와 만나 "운용 수수료 정책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은 게 한국형가치투자 펀드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펀드는 설정액의 0.8%를 기본운용보수로 받지만, 직전 1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면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국내 펀드 중 특정 클래스가 이런 구조로 출시된 적은 있지만 펀드 전체가 이렇게 나온 건 처음이다.

최 대표는 "지난 2월 300억원 한정으로 'VIP더퍼스트 펀드'를 출시했는데 당시에도 '-10%까지는 운용사 돈으로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했더니 판매 시작과 함께 완판됐다"며 "이 반응을 보고 금액 한도 없는 주력 공모펀드로서 한국형가치투자 펀드를 출시했다"고 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당장 수수료를 아끼려고 이 펀드를 선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증권업계에 대해 투자자들이 가졌던 불만에 귀 기울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 게 선택받은 진짜 이유"라고 했다.

VIP자산운용은 국내 유력 가치투자 운용사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에서 수천억 원의 뭉칫돈을 투자받기도 했다. 한국형가치투자 펀드는 최근 수익률을 통해 운용사의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이 펀드의 직전 3개월간 수익률은 3.21%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흐름(-3.97%)과 정반대다. 경영자의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눈여겨보고 투자한 게 좋은 성과를 낸 비결이라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특정 회사에서 좋은 의사결정이 연속적으로 나오면 최고경영자가 그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최근에는 경쟁력 있는 헬시플레저('건강한'을 뜻하는 영어단어 healthy와 '즐거움'을 뜻하는 pleasure의 합성어로 맛있는 음식으로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뜻)를 잇따라 내는 롯데칠성음료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헬시플레저는 맛이 일반 제품보다 못한 게 보통인데 이 회사는 무가당 소주 세로, 펩시제로, 밀키스제로, 핫식스더킹 등 맛까지 두루 갖춘 상품을 잇따라 내고 있다"며 "리서치와 경영자 미팅을 통해 회사 내에서 이 같은 의사결정이 구조화됐다는 걸 확인한 뒤 보유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좋은 의사결정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연구하고, 검수하고, 직접 먹어보고, 보완하는 등 지난한 의사결정 과정이 최고경영자 주도로 구조화돼 있어야 가능합니다. 맛과 트렌드를 모두 좇아가는 제품을 보고 이 회사가 확실히 달라졌다, 연속 안타를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롯데그룹에서 음료 쪽을 담당하는 최고경영자 두 명(이영구 롯데그룹 식품군 총괄대표,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의 영향으로 이런 변화가 만들어졌더군요."

투자를 하는 게 경영자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를 접는 것도 경영자의 영향이다. 최 대표는 "10여년 전 A 소주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든 뒤 마케팅을 잘해 부산을 거의 접수했는데 당시 이 회사에 투자해 수익을 많이 올렸다"며 "하지만 이후 경영자가 자신감이 너무 넘친 나머지 수도권까지 접수하겠다는 무리한 목표를 세우는 걸 보고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모두 매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는 "개인의 에고(ego)를 너무 드러내는 결정을 하는 경영자는 경계한다"고 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정량 지표도 중요하게 본다. 경영자와 비즈니스모델이 모두 훌륭해도 주가가 너무 비쌀 때 들어가면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특정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 생겨 주가가 많이 떨어지면 주식시장에서도 그 회사에 투자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퍼진다"며 "이때 소신 있게 해당 종목을 매수해야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수 시점을 결정하는데 PER이나 PBR과 같은 지표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가치투자의 시대가 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반등기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가치주가 좋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가치투자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같은 성장주라고 해도 오르는 종목과 떨어지는 종목이 있듯이 가치주도 모두 제각각"이라며 "아무리 가치주가 전반적으로 안 좋아도 오르는 가치주는 항상 있다. 이런 종목을 찾아내는 게 운용사의 목표"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