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 리스크에 '덜덜'…스테이블 코인에 눈돌리는 러시아
러시아 용병단체인 바그너그룹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지난달 말 러시아에서 ‘스테이블 코인’ 수요가 277% 급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가치에 고정된 자산 투자를 통해 루블화 가치 폭락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인 씨씨데이터 자료를 인용, 지난 6월 24일 러시아 루블화와 스테이블코인 ‘테더(Tether)’ 간 일일 거래량이 1470만달러(약 188억원)로 집계됐다고 30일 보도했다. 24시간 전 거래량(390만달러)과 비교하면 277% 늘어난 수준이다. 바로 다음 날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철수를 명령하자 이 수치는 300만달러 아래로 다시 급감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몇 주 동안 루블화와 테더 간 거래량이 3790만달러까지 치솟은 적이 있었다. 루블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질 걸 우려한 투자자들이 자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 거래에 뛰어든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동안 러시아인들은 현지 은행에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가 달러와 같은 법정 화폐와 1:1로 연동돼 있는 암호화폐다. 대표주자인 테더의 경우 1코인이 정확히 1달러의 가치를 갖는다. 이 때문에 다른 암호화폐 대비 가격 변동성이 매우 낮다.

러시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로부터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루블화의 가치 하락분을 상쇄할 수 있는 자산 저장고로 떠올랐다. 1달러당 루블화 가치는 개전 직후인 지난해 3월 134루블까지 낮아졌다가(가치가 내릴수록 1달러에 대응하는 루블화 액수는 커짐) 같은 해 6월 54.2루블까지 회복된 뒤 하락세를 거듭해 92루블까지 떨어진 상태다.

다국적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엘릭틱의 아르다 아카르투나 수석 애널리스트는 “제재가 가중돼 거래 자체가 막히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암호화폐 투자에 쓰겠다는 심리”라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암호화폐가 또 다른 차원의 ‘그림자 금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던 찰리 쿠퍼는 “루블화와 테더 간 거래로 누가 수혜를 봤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암호화폐가 정통 금융 시스템 밖에서 ‘악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