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연극계의 한 선배 배우가 sns를 통해 “하하하. 그저 웃는다, 그 오만함이란, 부자가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덧붙인다”라고 했다. 이어 “진심으로 진짜 연기로 속삭였는데도 350석 관객에게 들리게 하는 연기를 고민해야 할 거다, 연극할 때 그 고민을 안 했다면 연극만 하려 했다는 말을 거두어 들이기를, ‘해보니 나는 매체연기가 잘 맞았어요’라고 해라”라며 “속삭여도 350석 정도는 소리로 채우는 배우는 여럿 있다. 모든 연기는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일진대 진짜 연기가 무엇이라 규정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고 하며 후배 배우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 발언들이 논란이 되고 최근 뉴스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해 후배 배우는 “너무 하나만의 예시와 내가 평소에 배우 친구들과하고 얘기할 때 쉽게 쉽게 내뱉는 미숙한 언어, ‘야 너 왜 이렇게 가짜 연기를 하냐’ 이런 것들이 섞여지면서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문장들이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개인적으로 충분히 그럴 만했고, 반성했고, 선배님께 손편지도 써서 사과를 했다”라며 “선배님도 그걸 보시고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답장도 주셨고, 연극도 보러 오실 것”이라고 해 논란이 잘 해결됐음을 알렸다. 이 논란을 지켜보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배우가 각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고, 진짜 연기, 가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보았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시작된 비극 공연부터 연극은 제시적 연극과 재현적 연극의 반목으로 발전해 왔다. 연기예술도 이런 연극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형식의 연기법으로 발전해 왔다. 영화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 연기예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무대였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연기론의 기준은 무대연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과거 무대에서만 즐길 수 있던 연기예술은 이제 출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i, 1863-1938, 러시아의 연출가, 배우, 연극이론가. 사실주의 연극과 연기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로 무대연기의 흐름이 사실주의 연기법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며 연기예술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흔히들 연기를 잘한다고 하면 사실주의적 연기를 잘하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출과 무대적 실현을 텍스트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연극, 이를테면 전형적으로 연극에 속해 있는 모든 언어를 텍스트에 복종하도록 하는 연극은 바보의 연극이며 광인의 연극일 터이다.’
스타니슬랍스키 이후 성행한 사실주의적 연극에 대한 반동으로 반 사실주의적 연극의 흐름이 나타났고, 이후 포스트 드라마라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양한 연극의 사조가 공존하고 다양한 매체 넘나들며 연기예술을 펼쳐야 하는 현대의 배우들은 다양한 연기법을 배우고 매체에 맞는 연기예술을 펼칠 수 있어야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실적적으로 인물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1941- )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에서도 연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연기란, 지난 연재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상력에 의한 자극을 통해 충동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행동이 매체에 맞게, 또는 극장의 크기에 맞게, 또는 작품의 형식에 맞게 이루어질 때 진짜 연기, 좋은 연기가 되는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