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참을 수 없는 입법의 가벼움
‘법 나와라 뚝딱’ ‘묻지마 입법’. 국회에서 쏟아지는 입법 홍수를 풍자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뒷북’ ‘날림’ ‘졸속’ ‘보여주기’식 입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실제 수많은 입법이,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마구 쏟아지고 있다. 가끔 국회의원들이 도깨비방망이라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을 할 정도다.

입법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 까닭에 사전에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규제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한 사회 공론장에서의 활발한 논의도 필요하다. 국회 내에서 실제적인 숙의(熟議)가 이뤄지고 새로운 법에 적응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1주일 만에 뚝딱 입법안이 나오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이익집단이나 특정 계층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입법이 난무한다. 공청회 한 번 없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끝내버린 즉흥 입법도 허다하다. 법치국가가 법 우선의 원칙을 내세운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법만능주의는 입법 과잉을 야기하고, 입법 과잉은 졸속·불량 입법으로 귀결돼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가격 폭등을 불러왔고, ‘타다금지법’은 심야택시 대란을 불러왔다. 졸속 입법으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떠안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정인이법’은 사건이 알려진 지 6일 만에 속전속결로 통과됐는데, 부실 입법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한 달 만에 재개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중대재해처벌법’, ‘민식이법’은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에 대해 ‘형벌은 책임에 비례한다’는 기본원칙을 무시한 채 ‘강한 처벌만이 해결이다’라는 보여주기식 과잉 입법을 한 사례로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 국가의 재정이나 사업 타당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지역 표심을 의식해 마구 쏟아내는 각종 선심성 입법들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채무를 증가시켜 미래 세대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졸속·불량 입법들은 필연적으로 헌법과 기존의 법체계 및 사회의 시스템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는 위헌 시비로 법질서의 안정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한 신뢰마저 추락시킨다. 법을 만들면서 법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으로 그은 헌법을 마구 뛰어넘거나, ‘선심성 입법’ ‘보여주기식 입법’으로 법을 찍어내는 입법만능주의는 국민의 신뢰를 잃는 악수 중의 악수다. 법 경시 풍조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