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5000개 vs 4000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가 각각 보유한 반도체 설계자산(IP) 수다.

삼성 파운드리 '칩 설계도' 확보 속도전
IP는 반도체 기능을 개발할 때 꼭 필요한 ‘기본 설계도’로, 파운드리업체로선 첨단 IP를 많이 보유할수록 고객사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를 대상으로 한 영업이 쉽다. 파운드리업체가 제공하는 IP가 많을수록 팹리스들이 더 쉽고 빠르게 칩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내 인기 브랜드 매장이 많고 서비스가 좋을수록 고객이 더 몰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성전자가 TSMC와의 IP 경쟁력 격차를 좁히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자는 14일 “파운드리사업부가 시놉시스, 케이던스 같은 글로벌 IP 파트너사들과 협업해 첨단 IP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오는 28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SAFE 포럼’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된다.

반도체는 수많은 IP를 활용해 개발된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화·세분화하면서 인텔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도 칩 설계에 필요한 모든 IP를 개발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최근 영국 ARM, 시놉시스, 케이던스 같은 IP 전문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들 기업은 특정 IP를 개발해 반도체기업에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IP 기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인텔, 삼성전자 등이 최근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영국 ARM에 지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정 정보를 IP 파트너사들에 전달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칩, 자율주행용 칩 등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할 때 필요한 핵심 IP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팹리스 고객사들은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정에 최적화된 IP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개발 오류를 줄이고 시제품 생산과 검증 양산까지의 시간 및 비용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선 팹리스 고객사들이 칩 개발부터 양산까지 걸리는 5년 정도의 시간을 2~3년가량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종신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칩스앤미디어, 오픈엣지테크놀로지 같은 국내 IP 파트너사와의 협력도 확대해 고객의 혁신 제품 개발과 양산을 더 쉽고 빠르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