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에 가려졌던 뮤즈' 101세에 눈 감은 프랑수아즈 질로
1948년 프랑수아즈 질로와 파블로 피카소. / Robert Capa,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Magnum Photos

"나는 내 사랑의 노예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

'바람둥이'였던 파블로 피카소를 찬 유일한 여인이자, 예술가였던 프랑수아즈 질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세. 뉴욕타임즈는 "피카소의 명성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질로는 훌륭한 화가였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즈, AFP연합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질로는 6일(현지시간) 심장·폐 질환을 치료하다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1921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끌렸다. 아버지는 딸이 법조계로 가기를 원했지만, 질로는 법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화가인 어머니는 질로에게 힘이 돼 줬다. 그는 "나는 화가로 태어났고, 어렸을 적부터 예술가가 될 것이란 사실을 늘 알고 있었다"고 했다.
'피카소에 가려졌던 뮤즈' 101세에 눈 감은 프랑수아즈 질로
2021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질로의 작품. 이 작품은 130만달러에 팔렸다. /소더비

질로가 피카소를 만난 건 22세 때다. 당시 62세였던 피카소는 프랑스의 한 식당에서 질로를 보고 자신의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그 당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도라 마르도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40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미술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은 10년간 딸과 아들도 낳았지만, 결국 피카소의 바람 때문에 헤어졌다. 피카소가 자신의 지인과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질로는 피카소에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피카소는 "그 어떤 여자도 나같은 남자를 떠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질로는 "내가 그런 여자가 될 것이다"고 맞받아쳤다.
'피카소에 가려졌던 뮤즈' 101세에 눈 감은 프랑수아즈 질로
2004년 파리 워크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질로. /AFP

질로는 피카소와 헤어진 후 부담감에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질로는 샌디에이고 집과 프랑스 스튜디오를 왔다갔다 하며 그림을 그렸다. 1964년에는 '피카소와 함께한 삶'이라는 회고록을 통해 피카소의 여성편력과 마초적인 성격을 폭로하기도 했다.

질로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작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시간 날 때마다 맨해튼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붓과 이젤을 들었다. 2010년에는 예술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97세 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살아숨쉬는 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